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당산성에 있는 조선후기 구룡사 관련 사적비.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금강산의 산줄기가 속리산과 선도산을 거쳐 구룡산에 이르고, 이곳에 도천(道天)이 1720년(숙종 46)에 구룡사를 세웠다. 그 후 영휴(靈休)와 지원(智圓)이 향사를 이었고, 1743년(영조 19) 대방광 극락보전(大方廣極樂寶殿)을 새로이 세웠다.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에 절도사 유성추(柳聖樞)가 개축하였다.
비문은 1764년(영조 40) 4월, 은재거사가 찬하고 전(篆)하였다. 불량시주질(佛粮施主秩)에는 통정(通政) 이원징(李元澄)의 발문과 반일(半日)을 비롯한 53명의 명단, 그리고 시주 전답이 있고, 본사질(本寺秩)에는 판사(判事) 신은(信訔) 등 28명, 석수(石手) 김태산(金泰山) 외 1명이 있으며, 추록에는 1801년(순조 1) 경주최씨의 시주질이 있다.
특징
구룡사 사적비는 다른 사찰의 사적비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산성 내 3곳의 사찰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사적비가 남아있는 유일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비를 통해 구룡사의 창건 연혁과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상당산성: 종합지표조사 및 문헌자료집』(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1999)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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