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국가 최고 회의 기관이었던 비변사의 활동을 수록한 등록.
내용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이 책은 다른 기록과 함께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에 왜란 후 1616년(광해군 8)까지, 즉 전후 합계 62년 간의 등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617년(광해군 9)부터 1892년(고종 29)까지 276년 간의 등록 273책만이 현재 남아 있다. 1865년(고종 2)에 비변사가 의정부에 흡수된 이후에는 의정부 안에 비변사와 같은 조직을 두고 기록을 계속하였다. 이 때문에 1862년(철종 13)부터 1892년까지의 기록은 이전의 『비변사등록』과 같은 체재로 작성되었다. 1865년(고종 2) 이후의 기록은 원본 표지에 ‘의정부 상(議政府上)’ 또는 ‘정부 상(政府上)’이라 쓰여있다. 그래서 '의정부 등록(議政府謄錄)'이라는 명칭이 적합하겠지만, 그 체재가 철종 이전의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것도 『비변사등록』 속에 포함시킨다. 따라서 『비변사등록』은 1617년부터 1892년까지의 총 276년 분이 남아 있어야 하지만, 중간에 없어진 부분이 많다. 276년 중 54년 간의 등록이 없어졌다.
비변사는 설치 당시, 변방의 군무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국방 문제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계기로 확대, 강화되어 국방·외교 및 국정 전반에 관한 문제를 결정하는 최고의 국정 의결기관으로 변하였다. 그에 따라 『비변사등록』도 국정 전반에 관한 기본적 기사가 수록되었다. 그래서 『비변사등록』은 비변사에서 회의가 있을 때마다 낭청(郎廳, 郎官)이 입회해서 매일 매일의 회의 상황과 그 의결 상황을 직접 기록하였다. 때문에 원본은 단 한 질뿐이며, 낭청이 직접 붓으로 쓴 필사본이다. 한 질뿐인 원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에 있다. 한편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1959년부터 1960년에 걸쳐 해서(楷書)로 옮겨 쓴 뒤, 구두점을 찍어 영인본 28책으로 출판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해제」(강만길, 『한국의 명저』, 1969)
- 「비변사와 그 등록에 대하여」(신석호, 『한국사료해설집』,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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