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오(儆吾). 좌찬성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강극문(姜克文)이고, 아버지는 강순(姜淳)이며, 어머니는 이경종(李景鍾)의 딸이다.
1648년(인조 26) 진사가 되고, 1652년(효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장령 · 지평 등을 지냈다. 1667년(현종 8) 정언이 되고, 1671년 지평이 되었으며, 1673년 다시 정언이 되었으나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군내에 거주하는 종친들을 모아 종회(宗會)를 설립하고, 종친 사이의 화목과 유대강화에 힘썼다. 1675년(숙종 1) 경상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79년에는 이황(李滉)을 본받아 향약(鄕約)을 조직하여 종친뿐 아니라 고향의 나이어린 자제를 교육하는 한편, 환란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게 하였다. 1682년 종부시정 겸 춘추관편수관(宗簿寺正兼春秋館編修官)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