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제14대 왕 선조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서지 사항
편찬 경위
둘째, 정국의 불안정과 무옥(誣獄)으로 편찬 주체가 계속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당초 광해군 원년 10월 일실된 사료를 모아 실록 편찬을 시작할 당시 총재관(總裁官)은 이항복(李恒福)이었다. 이정귀(李廷龜)가 1611년(광해군 3) 11월에 대제학이 됐고 이정귀의 건의로 신흠(申欽)이 합류했으니 실록 편찬의 진용은 이항복-이정귀-신흠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항복은 광해군 5년 김제남의 옥사와 연루돼 인재 천거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한직(閒職)인 중추부로 옮겼다. 또한 광해군 9년(1617)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데 반대하다가 함경도 북청에 유배됐었으며 광해군 10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정귀와 신흠 역시 영창대군을 옹립하려고 했다는 박응서 등의 역모 사건과 이어진 김제남 옥사에 연루돼 파직되었다.
후 이이첨(李爾瞻), 기자헌(奇自獻)이 편찬 책임을 맡았다. 편찬에 참여한 실록청의 인원 구성을 보면,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총재관(摠裁官)) 기자헌,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총재관(摠裁官)) 이항복,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도청당상(都廳堂上))에 이호민(李好閔) · 유근(柳根) · 이이첨 · 이정구(李廷龜) · 박홍구(朴弘耉) · 조정(趙挺) · 민몽룡(閔夢龍) · 정창연(鄭昌衍) · 이상의(李尙毅) · 윤방(尹昉) · 윤승길(尹承吉) · 김신원(金信元) · 박승종(朴承宗) · 이시언(李時彦) · 김상용(金尙容) · 오억령(吳億齡) · 송순(宋諄) 등 17인이 있었다. 이밖에도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각방당상(各房堂上))에 박건(朴健) · 최유원(崔有源) · 정광적(鄭光績) · 신식(申湜) · 이수광(李睟光) · 박이장(朴而章) · 박진원(朴震元) · 정사호(鄭賜湖) · 구의강(具義剛) · 이성(李惺) · 김시헌(金時獻) · 김상준(金尙寯) · 김권(金權) · 최관(崔瓘) · 이경함(李慶涵) · 남근(南瑾) · 이시발(李時發) · 한덕원(韓德遠) · 이필영(李必榮) · 유공량(柳公亮) · 이정신(李廷臣) · 강홍립(姜弘立) · 강첨(姜籤) · 유인길(柳寅吉) 등 24인과 편수관(編修官)에 윤효전(尹孝全) 등 48인, 기주관(記注官)에 김유(金紐) 등 52인, 기사관(記事官)에 송일(宋馹) 등 81인이 있었다.
의의
『선조실록』은 기사가 조잡하고 당파 관계로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역대 실록 가운데 가장 질이 떨어진다는 평을 면치 못한다. 특히 서인 이이(李珥) · 성혼(成渾) · 박순(朴淳) · 정철(鄭澈) 및 남인 유성룡(柳成龍) 등에 대해 없는 사실을 꾸며 비방하는가 하면, 이산해(李山海) · 이이첨 등 북인 일파에 대해서는 지나친 칭찬을 하여 시비 및 선악이 많이 전도되었다. 따라서 인조반정 후 『선조실록』을 수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을 편찬하게 되었다.
현황
참고문헌
원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단행본
- 신석호, 『한국사료해설집』(한국사학회, 1964)
- 오항녕, 『후대가 판단케하라』(역사비평사, 2018)
논문
- 오항녕, 「『宣祖實錄』 修正攷」(『한국사연구』 123, 한국사연구회, 2003)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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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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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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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인쇄한 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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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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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바로 전대의 왕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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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초벌로 쓴 원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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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 시대에, 벼슬아치의 임명과 해임을 적어 놓은 문서.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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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떨어지거나 빠져서 완전하지 못한 글이나 책 따위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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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임금에게 올리던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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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 시대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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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비석에 새긴 글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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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죄가 있는 듯이 꾸며 내어 그 죄를 다스림. 또는 그 옥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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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조선 시대의 문신ㆍ한학자(1564~1635).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ㆍ보만당(保晩堂)ㆍ치암(癡菴)ㆍ추애(秋崖)ㆍ습정(習靜). 벼슬은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렀다. 한문학의 대가로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에 ≪월사집≫, ≪서연강의(書筵講義)≫, ≪대학강의(大學講義)≫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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