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연안부사, 사복시첨정,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었으나 그 이듬 해 정철(鄭澈) 등이 축출당할 때 다시 파면당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문학 · 교리 · 지평 · 사간 등을 역임하고, 난이 끝난 뒤 사인(舍人) · 수찬(修撰) · 직강(直講) · 연안부사 · 사복시첨정 등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임진왜란 때 전주로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청풍군(淸風君)에 봉해졌다. 1615년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정치가 문란하므로 사직하였다. 1618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무안으로 이배되어 5년 뒤 그 곳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선조실록(宣祖實錄)』
- 『잠곡집(潛谷集)』
- 『지수재집(知守齋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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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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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정여립 논박 상소 : 『선조수정실록』 19권, 1585년(선조 18) 6월 1일. "헌납 김권이 피혐하여 체직되고 정숙남을 헌납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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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유배지에서 사망 : 『광해군일기[중초본]』 174권, 1622년(광해 14) 2월 27일. "청풍군 김권이 유배지에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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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충간 : 『현종개수실록』 25권, 1672년(현종 13) 3월 27일. "충주 유생 한치상 등이 이자·이연경 등의 서원 사액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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