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공신(公信), 호는 죽월헌(竹月軒). 강문한(姜文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인(姜璘)이고, 아버지는 증영의정 강운상(姜雲祥)이며,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576년(선조 9) 생원 ·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9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592년 병조좌랑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 · 경상도의 운량어사(運糧御史)가 되어 군량조달에 힘썼다. 1595년 지평이 되고 이어서 사서(司書)를 겸하였으며, 경연에 나가 『주역(周易)』을 강론하였다. 1600년에 수찬(修撰)이 된 뒤, 교리 · 형조정랑 · 장령 · 검상 · 사예 · 사인 · 사복시정 · 전한 · 홍문관응교를 거쳐, 1603년에 사간이 되어 최영경(崔永慶) · 정철(鄭澈) 등을 탄핵하였다.
1604년에 부승지가 되고, 1606년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거쳐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이조참의 · 좌부승지 ·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610년에 대사헌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악을 미워하고 소인을 멀리하였으며, 관부(官府)에서나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