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예천군수, 예빈시부정, 초계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노모의 봉양을 위해 외직을 자원하여 김천찰방으로 전직되었다가, 내섬시직장 · 송라찰방을 역임하고 1585년 학행으로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에 특진되었다. 이어 홍산현감 · 군자감판관을 거쳐 예천군수로 있던 중 파직당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 의해 초계군(草溪郡)의 임시수령으로 기용되어 왜군과 싸웠으며 곧 예빈시부정으로 전직명령이 내렸으나, 유생 정유명(鄭惟明) 등의 유임상소에 의해 초계군수로 유임되어 강우(江右) 지역의 보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학문을 즐겼고 사람됨이 순정하여 가는 곳마다 학풍을 일으켰으며, 찰방으로 있을 때에는 풍속을 순화하였다. 현풍의 도동서원(道東書院) 별사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 『청선고(淸選考)』
- 『남명집(南冥集)』
- 『성호문집(星湖文集)』
- 『외재집(畏齋集)』
주석
-
주1
: 가계 :: 『가정37년무오식년추사마방목(嘉靖三十七年戊午式年秋司馬榜目)』(『연계방(蓮桂榜)』, 국립중앙도서관[古6024-145])
-
주2
: 학통 : 국조인물고 권38, 곽율 행장.
-
주3
: 사마시 급제 : 『가정37년무오식년추사마방목(嘉靖三十七年戊午式年秋司馬榜目)』(『연계방(蓮桂榜)』, 국립중앙도서관[古6024-14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