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봉상시첨정, 성균관사성, 춘추관편수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우성전(禹性傳) 등과 함께 경외(京外)에 흩어진 군졸들을 모아 왜적을 방어하고, 통진현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1593년 예조정랑에 제수되었으며, 장악원첨정을 거쳐, 1595년 영해부사로 나아갔다. 1599년 강화부사·봉상시첨정·성균관사성·사헌부장령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종성·강계·나주·광주(光州) 등의 부사와 목사를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그 뒤 사복시정(司僕寺正)·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길주목사·영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문원판교로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을 중인(重印)할 때 참여하였다. 이 해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영평(永平)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봉산관(鳳山館)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월사집(月沙集)』
- 『상촌고(象村稿)』
- 『백강집(白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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