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봉상시첨정, 성균관사성, 춘추관편수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태징(台徵)
용계(龍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9년(명종 14)
사망 연도
1607년(선조 40)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강화부사|봉상시첨정|성균관사성|춘추관편수관
관련 사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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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봉상시첨정, 성균관사성, 춘추관편수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태징(台徵), 호는 용계(龍溪). 이공달(李公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문성(李文誠)이다.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9년(선조 22)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추천되었다가 주부·감찰·호조좌랑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아가 통진현감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녀자와 선비 및 양식을 통진에서 강화도로 보냈다.

그 뒤, 우성전(禹性傳) 등과 함께 경외(京外)에 흩어진 군졸들을 모아 왜적을 방어하고, 통진현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1593년 예조정랑에 제수되었으며, 장악원첨정을 거쳐, 1595년 영해부사로 나아갔다. 1599년 강화부사·봉상시첨정·성균관사성·사헌부장령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종성·강계·나주·광주(光州) 등의 부사와 목사를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그 뒤 사복시정(司僕寺正)·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길주목사·영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문원판교로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을 중인(重印)할 때 참여하였다. 이 해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영평(永平)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봉산관(鳳山館)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
『월사집(月沙集)』
『상촌고(象村稿)』
『백강집(白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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