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숙지(叔止), 호는 용졸재(用拙齋). 신숙주(申叔舟)의 5대손이며, 신광윤(申光潤)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신서(申漵)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신중엄(申仲淹)이며, 어머니는 유엄(柳渰)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로 있을 때 정여립(鄭汝立)의 일파로 탄핵되어 유배당하였다가 1592년 다시 집의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도안무어사(慶尙道按撫御史)로 활약하였다.
그 뒤 동부승지·좌부승지·좌승지 등을 역임하고 대사간과 부제학을 거쳐 도승지·동지중추부사·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1599년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호조참판·대사헌이 되었다.
광해군 즉위 후, 충청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다가 또 다시 사은사로 명에 가서 왜의 실정을 알렸다. 말년에는 지중추부사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청주의 쌍천서원(雙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의례고증(疑禮攷證)』·『가례언해(家禮諺解)』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