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의백(毅伯), 호는 강암(江岩). 한형(韓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거비(韓去非)이고, 아버지는 한곤(韓悃)이며, 어머니는 남궁후(南宮厚)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8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검열에 천거되었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594년 장단부사 · 전주부윤을 역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선치수령(善治守令)으로 명성을 떨쳤다.
1596년에는 비변사(備邊司)에서 왜란중 전략상 요충지인 나주에 재략이 있는 자를 수령으로 뽑아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나주목사가 되었다. 이듬해 심유경(沈惟敬)의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극진하게 접대하였으므로, 심유경이 선조에게 그에 대한 포상(褒賞)을 청하였다.
1600년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경기도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대사헌이 되었으며, 이어서 황해도와 강원도의 관찰사를 역임한 뒤 1606년 의주부윤이 되었다. 1609년(광해군 1) 왕세자책봉을 위한 사은사(謝恩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