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우참찬, 형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덕으로 세자를 호종(扈從)하였고, 그 뒤 전적·필선을 거쳐 회양부사·광주목사(廣州牧使)·남양부사·안변부사로 나아갔다. 그 뒤 호조판서·대사간·동부승지·부제학·동지중추부사·대사성, 이조·호조·형조의 참판 및 지의금부사·대사헌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01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한성판윤이 되고, 1609년 형조판서로 또 다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우참찬·형조판서·우의정을 역임하였고, 형난공신(亨難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한천군(漢川君)에 봉해졌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 광해군을 가리켜 ‘전주(前主)’라 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작을 삭탈당하였고, 이어 광해군 때 공신이 되었다는 죄목이 가중되어 1628년 해남에 유배,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이듬해 죽었다.
1675년(숙종 1)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고, 저서로는 『동사보유(東史補遺)』가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양주조씨족보(楊州趙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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