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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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개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실록, 일기 등 역사 편찬의 첫 번째 자료로서 사관이 매일 기록한 원고.
이칭
이칭
시정기(時政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사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춘추관에 소속된 사관(史官)들이 군주의 동정 및 관료들과의 국정 운영 사실을 비롯하여 매일매일의 시정 득실 등을 포함하여 모든 사실을 기록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초는 실록 편찬 시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사료의 하나이다.

목차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실록, 일기 등 역사 편찬의 첫 번째 자료로서 사관이 매일 기록한 원고.
내용

사초(史草)는 사관(史官)들이 매일매일의 시정(時政)과 득실(得失), 관리들의 현부(賢否)나 비행(非行)을 기록한 것으로, 시정기(時政記)라고 하였다. 매달 1책 혹은 2책으로 묶어 매년 마지막 달에 왕에게 책수(冊數)만 보고하고, 춘추관(春秋館)에 보관했다가 실록 편찬 시 이용하였다. 비밀이 엄격히 지켜져 실록의 편찬이 완료되면, 세초(洗草)를 통해 물에 빨아 재생 종이로 활용되었다.

춘추관에서 공적으로 작성한 시정기는 일종의 공적 사초였다. 시정기는 첫째 줄에 연월일 ‧ 간지(干支) ‧ 날씨, 각 지방에서 일어난 특이 사항을 쓰고, 둘째 줄에는 왕이 있는 곳, 경연(經筵)의 참석 여부, 왕에게 보고되거나 명령이 내려진 사항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왕명과 관계되는 것도 원칙이 있어서, 먼저 입시(入侍)하여 설명하는 일은 내용의 요점만 기록하고, 연혁(沿革)과 시비(是非)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썼다. 사헌부사간원에서 아뢰는 것은 무조건 기록하였으며, 여러 번 되풀이되면 내용에 첨가된 것만 더 쓰도록 하였다.

의식과 예법은 후일에 참고가 된다고 판단되면 번거로워도 모두 기록하였고, 과거 급제자는 누구 외 몇 명이라고 썼다. 관리의 임명은 고관(高官)만 쓰되 지방관의 임명과 특별 임용의 경우나, 임용에 물의가 있을 때는 아무리 하찮은 관리라도 모두 이름을 쓰도록 하였다. 공식적으로 작성된 사초 이외에 가장(家藏) 혹은 사장(私藏)의 사초가 있었다.

종류

사초는 입시사초와 가장사초로 구분된다. 전자는 군주와 관료들이 모여 국정을 논하는 현장에 직접 참석하여 기록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춘추관에 제출되어 『승정원일기』, 겸임사관이 보고한, 각 관청의 시행사(施行事)와 함께 시정기로 작성되었다.

후자는 국정 시행사는 물론, 특정 인물에 대한 시비 득실 및 사관의 평가까지 기록되었다. 여기에는 비밀스러운 사안까지 기록되었으며, 개인적으로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실록 편찬 시 실록청에 제출했기 때문에 입시사초와 성격이 달랐다.

특징

세종 때 사초에 대한 기록을 보면, 사관은 비밀스러운 일이나 개인의 인물됨 등을 따로 가장사초로 작성해 두도록 하고, 시정기는 부본(副本)을 충주사고에 두도록 하였다. 가장사초는 사관이 개별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관했다가 실록을 편찬할 때 춘추관에 제출해야 했다. 또한 사관은 사초를 절대로 누설할 수가 없도록 하는 법적 조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초는 간혹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사화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연산군 대에 발생한 무오사화(戊午史禍)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가장사초를 제출할 때 작성자의 성명을 기입하지 않았으나, 정변이 몇 차례 발생된 뒤로는 가장사초의 납입(納入) 때 사초 작성자의 성명을 기록하게 하였다. 한편 왕은 실록뿐만 아니라 사초도 볼 수 없었다. 폭군이었던 연산군이 재위 10년이 지난 뒤 가장사초를 작성하지 못하도록 명한 일이 있었지만, 사초를 볼 수는 없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육전조례(六典條例)』
『육전조례(六典條例)』

단행본

김경수, 『조선시대의 사관 연구』(국학자료원, 1998)
이성무,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동방미디어, 1999)
배현숙, 『조선실록 연구 서설』(태일사, 2002)
오항녕, 『한국 사관 제도 성립사 연구』(일지사, 2009)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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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근, 「조선 전기 사관(史官)과 실록 편찬에 관한 연구」(『진단학보』 66, 진단학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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