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광해군 당시 영의정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621년 초 후금(後金)은 요양(遼陽)과 심양(瀋陽)을 함락하고 요동 지역을 점령하였다. 후금은 조선에 대해 기존의 명에 대한 사대를 수정하고 후금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라는 외교적 압박을 가하였다. 광해군은 후금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후금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비변사를 비롯한 모든 신하는 후금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명과의 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 영의정 박승종은 비록 후금이 침입해 올 것이라는 전쟁의 압박이 강하지만, 후금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장하였다. 인조반정 직후 아들 박자흥(朴子興)과 함께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선조실록(宣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논문
- 한명기, 「明淸交替 시기 朝中關係의 추이」(『東洋史學硏究』 第140輯, 2017)
- 계승범, 「광해군대 말엽(1621~1622) 외교노선 논쟁의 실제와 그 성격」(『歷史學報』 第193輯, 역사학회, 2007)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