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박흥립(朴興立). 자는 인길(仁吉), 호는 서당(瑞堂). 박계현(朴啓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안세(朴安世)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박승종(朴承宗)이며, 어머니는 재령군수 김사원(金士元)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이때 고시관이 아버지와 장인인 이이첨(李爾瞻)이어서 물의가 분분하였다. 1611년 5월 설서(說書)가 되고, 7월에는 딸이 세자빈으로 책정되자 벼슬이 정6품인 전적으로 올랐다.
그 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이조정랑·동부승지·형조참의·전라감사·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1621년 대사성이 되고 다음 해 경기감사로 재직시에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군사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함께 과천에 있는 절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이이첨의 사위였으나 서로 반목하였고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 때에는 형조참판으로 폐비절목(廢妃節目)을 정하는 등 앞장섰고, 딸이 세자빈이 된 뒤 권세를 얻어 민전(民田)을 탈취하고 사치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