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형조판서, 동지의금부사, 의정부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일(子一)
남악(南岳)
시호
숙간(肅簡)
이칭
해선군(海善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0년(중종 35)
사망 연도
1616년(광해군 8)
본관
해평(海平,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주요 관직
평안도관찰사|형조판서|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의정부좌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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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형조판서, 동지의금부사, 의정부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일(子一), 호는 남악(南岳).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 윤훤(尹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윤은필(尹殷弼)이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장림수(長臨壽) 이순민(李舜民)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6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장령 등 여러 중요관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구성부사로 있으면서 군량미 조달과 군인모집 등에 공을 세우고, 1594년(선조 27)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에는 전란에 시달려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고 장정을 뽑아, 기효신법(紀効新法)으로 훈련을 시켜 명나라 지휘관으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았다.

이어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600년 형조판서가 되었으며, 이해 딸이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 이공(仁城君 李珙)과 결혼하였다. 한성부우윤을 지내면서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겸직하고, 관직은 의정부좌참찬으로 끝났다. 뒤에 해선군(海善君)에 봉하여졌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택당집(澤堂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선원계보(璿源系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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