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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00년 무렵부터 9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용된 사용된 그리스도교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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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기원전 900년 무렵부터 9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용된 사용된 그리스도교경전.
개설

기원전 900년 무렵부터 9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쓰여진 히브리인들의 종교적인 책이다. 율법서·역사서·예언서·시문학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야훼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에 계약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이 지상에서 인간들의 사명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고 있다.

첫째, 율법서는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라(Torah) 혹은 모세오경(Penta teuch)이라고도 한다.

<창세기>는 태초에 이 세상과 인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밝혀 주고, 유태인들의 조상의 기원 및 선민(選民)으로서 그들의 위치를 말해 준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과정과, 시나이산에서 야훼와 계약을 맺을 때 그들이 약속한 율법들을 나타내 주고 있다. <레위기>에는 여러 가지 희생제의의 율법과 규정들, 안식일 지키는 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와 그들이 광야에서 방랑하는 이야기이며, <신명기>는 모세의 유언과 개정된 율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 예언서는 21권으로 되어 있는데, 역사서(혹은 前期 豫言書) 6권과 대예언서 3권, 소예언서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서는 <여호수아>·<판관기>·<사무엘 상>·<사무엘 하>·<열왕기 상>·<열왕기 하>로 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부터 바빌론 포로가 될 때까지를 예언자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이야기와 가나안 정복 때의 이야기이다. <판관기>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부닥친 어려움과 극복책으로서 하느님 율법에 대한 순종, 그리고 판관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무엘 상>은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무엘 하>는 다윗왕에 관한 것이다.

<열왕기 상>은 다윗의 죽음과 그 아들인 솔로몬의 치세에서 아합의 아들 아하지야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열왕기 하>는 그 뒤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고 멸망으로 이끈 여러 가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대예언서는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의 3권으로, <이사야>는 1장에서 39장까지 여러 가지 주제와 상황에 대한 예언자 이사야의 설교인 제1이사야, 40장에서 55장까지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하는 제2이사야, 그리고 56∼66장의 메시아 도래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는 제3이사야 등으로 각 부분간에 구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레미야>에서는 40년간 위기에 처할 국가의 운명을 예언하고, 새 계약에 관하여 예언하는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며, <에스겔>에서는 이스라엘의 잘못에 대한 에스겔의 꾸짖음과 새로운 계약을 통한 구원의 약속이 나타나 있다.

소예언서라고 하는 이유는 내용이 짧기 때문인데, 다음과 같이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의 하느님을 강조하는 <호세아>, 단식과 기도로 참회하면 하느님이 영(靈)을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했다는 <요엘>, 야훼가 이스라엘을 죄 때문에 멸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아모스>, 유다의 적과 결탁한 에돔에 대하여 비난하는 <오바디야>, 하느님은 유태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요나>,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태어날 것을 예고한 <미가>, 기원전 7세기 말 니느웨가 유다를 위협한 직후 니느웨(아시리아)를 단죄하는 <나훔>, 나훔을 뒤이은 유다에서의 예언으로, 유다에 대한 징벌로서 바빌론을 이용하는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하바국>, 요시야왕 치세 때 우상숭배와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는 데 대하여 훈계하는 <스바니야>, 바빌론 유배 후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태인들에게 야훼의 성전을 재건하라고 요청하는 <학개>, 성전 재건에서 학개의 동반자인 예언자 즈가리야의 메시아적 환상을 기록한 <즈가리야>, 악습과 무관심에 대하여 설교하는 <말라기> 등이 그것이다.

셋째, 성문서(聖文書)는 율법서와 예언서 이외의 책을 가리키는데, 다음과 같이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50편에 달하는 기도와 찬양의 노래인 <시편>, 솔로몬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쓴 종교적·세속적 지혜 및 속담·금언 모음집인 <잠언>, 착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욥기>가 있다.

또, 바빌론으로 끌려간 젊은 유태인 다니엘이 고위관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인 <다니엘>, 기원전 536년 바빌론 유배에서 유태로 돌아온 이야기인 <에즈라>, 유배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의 생활 및 성전 재건을 위해 페르시아 왕실을 떠난 위대한 지도자의 이야기인 <느헤미야>가 있다.

그리고 아담에서부터 다윗까지의 역사인 <역대기 상>, 솔로몬으로부터 분열왕국시대에 이르는 유다의 역사 <역대기 하>,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사랑의 서정시 <아가>(솔로몬의 노래)가 있다.

어떻게 모압 여인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딸이 되고, 다윗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인 <룻기>,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로 인한 혼란과 압제를 슬퍼하는 노래집이며, 예레미야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는 <애가>, 자연과 왕과 독립적 인간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지혜를 설명하는 <전도서>가 있다.

페르시아의 왕후가 되어 자기 백성을 멸망에서부터 구해 낸 한 유태 여인의 이야기이며, 히브리 성서 가운데 유일하게 하느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에스델> 등이다.

이와 같이 5권의 율법서, 21권의 예언서, 13권의 성문서를 합하여 39권의 히브리 문서들은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구약성서이다. 개신교에서는 외경(外經, Aporypha)이라 하여 경전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제2경전 7권을 가톨릭교회·동방정교회·성공회에서는 목록에 추가하여 총 46권을 구약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토비트>·<유딧>·<지혜서>·<집회서>(시라의 지혜서)·<바룩>·<마카베오 상>·<마카베오 하>등이다.

구약전서는 주로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고, <에스라> 1부와 <다니엘>1부, 그리고 <예레미야>의 한 구절, <창세기>의 한 단어가 아랍어로 쓰여 있을 뿐이며, 외경은 모두 헬라어(그리스어)로 쓰여 있다.

기원전 90년경에 ‘유포되고 있는 상당수의 책들 모두가 과연 진정한 하느님의 말씀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유태교 신자들을 위해 팔레스티나의 얌니아(Jamnia)에 모여 성서의 경전 목록을 확정함으로써 얌니아의 정경을 확립시켰다.

그런데 당시 많은 유태인들은 그 이전부터 그리스 문화권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어인 그리스어로 유태교 경전을 번역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어, 기원전 3세기경에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에 걸쳐 70인의 전문학자들에 의해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 역 성서’라고도 불리는 ≪셉투아진트 Septuagint≫를 간행하였다.

이 번역본에는 얌니아의 정경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은 <토비트>·<집회서>를 정경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마카베오 하>와 <지혜서>도 수록하고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382년 로마 주교회의 때 성서의 정경을 46권으로 공식적으로 규정하였고, 1546년 트리엔트회의 때 이를 다시 확인하였다.

16세기의 교회 개혁자들은 얌니아의 히브리 성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제2경전을 위경(僞經)이라고 부르면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39권의 히브리성서만을 정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에큐메니컬운동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정경에 대한 이견이 조정되기 시작하여, 1968년 세계성서공회와 가톨릭은 협정을 체결하고 제2경전을 공동번역에 수록하기로 합의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구약의 번역은 1898년피터스(Pieters,A.A., 彼得)에 의한 ≪시편촬요≫가 처음으로, 구약의 <시편> 중 저주시편을 제외한 62편을 번역한 것이다.

본격적인 번역은 1900년 신약성서의 번역이 끝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가 1907년 이후 레이놀즈(Reynolds,W.D., 李訥瑞)·이승두(李承斗)·김정삼(金鼎三)을 중심으로 박차를 가하여, 1910년 번역이 완성되어 이듬해 발행되었다.

1911년 구약성서의 번역본이 발간됨으로써 신·구약 전체가 국역되었으나, 성서 번역이 완성되자마자 곧바로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특히, 구약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세 사람에 의해 급히 번역된 것이었기 때문에, 개정이 보다 시급히 요청되어 구약개역작업이 먼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1911년에 구약개역자회가 구성되었으나 잦은 인적 변동으로 인하여 개역작업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가, 1926년 피터스·남궁 혁(南宮爀)·김관식(金觀植)·김인준(金仁俊) 등이 개역위원으로 추가되면서 활발하게 이루어져, 1936년에 ≪구약개역≫이 발행되었다.

구약개역자회가 구성된 지 25년 만에 마무리된 것으로, 1931년 이전에는 베어드(Baird,Jr.W.M., 裵義林), 그 뒤에는 피터스가 주관하여 이루어졌다.

1938년에는 개역된 ≪신약젼셔≫가 발행되면서 신·구약이 합본되어 ≪셩경개역≫으로 출간, 널리 사용되는 공인 성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 개역 성서는 서양 선교사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성서 국역 초간본의 결함을 극복하지 못하였고, 개역작업에 참여한 우리 나라 위원들도 주로 한문 성경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오역이 적지 않았으며, 우리의 생활과 괴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한글이 일상생활의 문자로 정착됨에 따라 개역 성서를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맞추어야 한다는 요청이 일어나 1952년 맞춤법을 통일한 ≪신·구약전서≫가 간행되었다.

1956년에는 1938년의 ≪성경개역≫을 다시 손질하여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현재 개신교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개역판과 구별하여 1900년의 신약과 1911년의 구약을 옛 번역 혹은 구역(舊譯)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이 개역판의 문체는 여전히 실생활의 언어와는 거리가 있었고, 개역 성서 자체가 일제강점기에 외국 선교사들 중심으로 번역, 간행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성서 국역의 주체성 논란이 있었다.

또 원전에서의 번역이 아닌, 중역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어 한국인 중심으로 원전으로부터의 직접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 ‘새 번역’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따라서 가톨릭 쪽에서는 신부 선종완(宣鍾完)의 구약전서 번역이 1959년부터 시작되었고, 윤형중(尹亨重)·최민순(崔玟順)·서창제(徐昌濟) 등의 협조로 1963년에는 13권으로 분책된 ≪구약전서≫의 간행을 보게 되었다.

또한 ‘새 번역’ 시대에 특기할 만한 일이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공동으로 성서를 번역해낸 것인데, 구약 및 외경을 완역하여 ≪공동번역성서≫를 발행하게 된 것은 1977년 부활절 때였다.

성서의 우리말 번역에서 ‘구역’과 ‘개역’은 원문의 문법적 구조와 문장상의 특징을 가능한 한 그대로 살리려는 형식 일치의 번역 혹은 축자역(逐字譯)이므로, 아주 낯설게 보이는 문체와 의미전달이 힘든 내용을 담게 되기가 쉽다.

반면, ‘공동번역’의 경우는 문법형식이나 문장구조의 형식은 달라져도 원문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지니도록 번역하려는 내용동등성(內容同等性)의 번역원칙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번역된 의미가 쉽게 전달된다.

그러나 원문의 중요한 낱말들이 우리말의 관용적 표현으로 모두 대체되어 없어져 버린다는 비판이 제기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현재에는 ‘개역’의 형식 일치의 번역과 ‘공동번역’의 쉬운 의미 전달의 번역 모두가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요청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의 ‘200주년 성서’와 대한성서공회의 ‘구약성서 새 번역’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참고문헌

『구약성서개론』(박대선·김찬국·김정준, 대한기독교서회, 1960)
「성서국역사론고」(이원순, 『민족문화』 3, 1977)
「구약성서국역사」(김중은, 『신학사상』 22, 1978)
『오늘의 구약성서연구』(서인석, 성바오로출판사, 1983)
『국역성서연구』(민영진, 성광문화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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