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중 ()

목차
천주교
인물
해방 이후 가톨릭대학 의학부장, 미리내 본당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이칭
이칭
마태오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1979년
출생지
충청북도 진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가톨릭대학 의학부장, 미리내 본당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내용

세례명 마태오. 충청북도 진천 출생. 6세 때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하였다. 1918년 예수성심학교에 입학, 1930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서울 중림동본당의 보좌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1933년 서울교구 출판부 보좌로 전임된 이후 『가톨릭청년』 편집장(1933), 『경향잡지』 편집장(1937, 1946년에는 주필 겸 발행인), 「경향신문」 사장(1947)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창달과 저술활동을 통한 교리전파에 전 생애를 바쳐, 가톨릭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인정받았다.

1946년 순교자 현양회 중앙위원장, 1954년 가톨릭대학 의학부장, 1959년 미리내 본당 신부, 1961년 복자 수녀회 지도신부 등을 거치면서, 그간 순교복자현양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지성인들을 위한 교리강좌를 열어 수많은 사회 인사를 천주교에 귀의시키는 데 큰 공적을 남겼다. 1974년에는 유신 독재를 반대하여 결성된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하여 상임 대표 위원을 맡기도 했고, 1979년 지병인 폐암으로 선종했다. 저서로는 『『종교의 근본 문제』(1952)와 『상해 천주교 요리』(1957) 등이 있고, 많은 논문과 수필이 있다.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