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세례명 토마스. 일명 면호(冕浩) 또는 계호. 안동 출신. 어려서 서울 주동(鑄洞)에 이사해 살았다.
그의 어머니와 형 익례(翼禮)·응례(應禮)가 먼저 입교하였고, 그는 형들로부터 교리를 배워 19세 때 입교하였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여 놀기를 좋아했으므로 18년 동안이나 교회에 대해 냉담했는데, 1866년 초에 비로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켜나갔다.
그는 다른 신자들 앞에서 지난날의 잘못을 씻는 길은 오직 순교로 구원을 받는 길밖에 없다고 공언하고 다닐 만큼 열성적으로 전교에 힘썼다.
1866년 병인박해의 기미가 보이자 이를 막고자 고심하던 중, 때마침 러시아가 남진야욕을 드러내어 우리나라 북부국경을 자주 침범하는 일이 일어났으므로, 나라를 구하고 교회를 박해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남종삼(南鍾三)·홍봉주(洪鳳周) 등과 상의, 주교 베르뇌(Berneux, S. F.)를 통하여 통해 프랑스의 세력을 이용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려는 이른바 방아책(防俄策)을 흥선대원군에게 건의하는 편지를 올렸다.
그러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 해 7월 18일 붙잡혀 9월 10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