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이 회 소속 신부 맥폴린(Mcpolin, O.) 등 일행 10명이 우리나라에 도착, 목포시 산정동(지금의 성골룸반 병원)에 본부를 두고 주로 전라남도와 제주도의 사목을 담당하였다.
1937년 광주교구, 1939년에 춘천교구가 각각 설정되자, 골룸바노회에 그 사목이 위임되었고, 1971년에 신설된 제주교구에도 이 회의 회원 헨리(Henry, W. H.)가 초대교구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들의 선교에는 많은 시련이 따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에 의하여 아일랜드 신부 11명이 목포에 연금 당하였다가 강원도 홍천에 옮겨 감금된 바 있고, 6·25사변 당시 공산당에 붙들린 9명의 신부 중 7명이 피살되었다.
납치된 주교 퀸란(Quinlan, T.)과 신부 크로스비(Crosbi, P.)는 시베리아를 횡단,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고국에 생환하는 ‘죽음의 행진’을 겪었다. 그 뒤 퀸란은 1953년 10월 주한 교황사절 서리직과 춘천교구장직을 맡아보다가 우리나라에서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