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전주교구장. 세례명 스테파노.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만석동 출신. 아버지 김덕련이 박해를 피해 충청도에서 만석동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1900년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한 뒤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뒤 전라도 담당 신부로 임명되어 전라북도 진안 어은동을 근거로 장수 · 남원 · 무주 등 18개 공소(公所)를 순회하며 사목과 전교활동을 하였다.
1931년 전라도 지방이 감목 대리구(監牧代理區)로 설정되자 초대감목대리로 임명되었고, 1937년 전라남도 지역이 광주 지목구(光州知牧區)로, 전라북도 지역이 전주지목구로 대구교구에서 분할 독립되면서 전주지목으로 임명됨으로써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의 교구장이 되었다.
그 당시의 전주지목구의 교세는 신부 14명, 신자 1만7527명, 성당 36개, 공소 190개에 달했는데, 이는 김양홍의 노력에 힘입은 바 컸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져 한때 구금되기도 하였고, 노령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그 해 11월 21일 교구장직을 사임하였다.
사임 후 석동(石洞)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의 본당신부를 거쳐, 1942년 광주교구로 이적하여 나주본당신부로 재직 중 1945년 5월 3일 72세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