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홍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교구장을 역임한 신부.
이칭
  • 이칭스테파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4년(고종 11)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석우 (한국교회사연구소, 신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교구장을 역임한 신부.

내용

초대전주교구장. 세례명 스테파노.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만석동 출신. 아버지 김덕련이 박해를 피해 충청도에서 만석동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1900년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한 뒤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뒤 전라도 담당 신부로 임명되어 전라북도 진안 어은동을 근거로 장수 · 남원 · 무주 등 18개 공소(公所)를 순회하며 사목과 전교활동을 하였다.

1931년 전라도 지방이 감목 대리구(監牧代理區)로 설정되자 초대감목대리로 임명되었고, 1937년 전라남도 지역이 광주 지목구(光州知牧區)로, 전라북도 지역이 전주지목구로 대구교구에서 분할 독립되면서 전주지목으로 임명됨으로써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의 교구장이 되었다.

그 당시의 전주지목구의 교세는 신부 14명, 신자 1만7527명, 성당 36개, 공소 190개에 달했는데, 이는 김양홍의 노력에 힘입은 바 컸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져 한때 구금되기도 하였고, 노령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그 해 11월 21일 교구장직을 사임하였다.

사임 후 석동(石洞)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의 본당신부를 거쳐, 1942년 광주교구로 이적하여 나주본당신부로 재직 중 1945년 5월 3일 72세로 죽었다.

참고문헌

  • - 『한국천주교회사』(유홍렬, 가톨릭출판사, 197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