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위편은 조선 후기 천주교 신앙 운동을 배척하는 내용들을 여러 문헌에서 모아 엮은 천주교서이다. 7권 2책의 현행본과 4권 4책의 양수본이 있다. 제1권은 천주교가 동양에 전래한 전말을 밝혔다. 제2권과 3권은 조상제사를 폐지한 윤지충을 처형한 사건과 천주교 신자 처벌, 주문모의 영입 등을 기록하였다. 제4권과 제5권은 신유박해의 전말과 체포된 교인들의 판결문을 요약해서 기재하였다. 제6권은 신유박해를 모면한 교인들이 산간벽지에서 신앙생활을 계속한 점을 지적했다. 제7권은 외국인 신부들이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한 사실을 수록하였다.
사도(邪道)를 물리치고 정도(正道)를 옹호한다는 ‘벽사위정(闢邪衛正)’의 준말을 표제로 하였다. 현행본(現行本)과 양수본(兩水本)의 두 가지가 있다. 현행본은 이기경(李基慶)이 편찬을 시작하여 후손들이 계속 자료를 보충하여 1931년 5대손인 이만채(李晩采)가 벽위사에서 석인본으로 간행한 7권 2책의 것을 말한다. 그리고 양수본은 이기경 자신이 편찬한 것으로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후손 집에서 전해져 내려온 4권 4책의 필사본을 말한다.
두 가지가 모두 당시의 천주교를 사교로 몰아 이를 저지하려는 정부와 유교의 입장에서 정리한 사료이다. 양수본과 현행본의 차이는 양수본이 1785년(정조 9)부터 1801년(순조 1)까지의 15년에 걸친 자료를 수록하고 있는 데 비하여 현행본은 1785년부터 1856년(철종 7)까지 72년간에 걸친 광범위한 사료를 수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에 대한 비판문헌까지도 발췌하여서 수록하였다는 데 있다.
현행본의 내용은 제1권에서 천주교가 동양에 전래한 전말을 중국의 정사와 야사를 인용하여 밝히고 있다. 또한 이익(李瀷)의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 안정복(安鼎福)의 『천학고(天學考)』, 이헌경(李獻慶)의 『천학문답(天學問答)』, 신후담(愼後聃)의 『서학변(西學辨)』을 그대로 옮겨서 천주교 배척의 이론적 근거로 내세웠다.
제2권은 1785년에 일어난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과 1787년 겨울 이승훈(李承薰) · 정약용(丁若鏞) 등이 성균관 근처 반촌(泮村)에서 교리를 토의하다 적발된 사건, 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일어난 윤지충(尹持忠) · 권상연(權尙然)의 조상제사 폐지로 인한 처형사건 등을 기록하였다.
제3권은 윤지충의 처형 이후 이승훈 · 권일신(權日身) 등 주요 천주교 신봉자들에 대한 처벌과,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의 영입과 관련된 윤유일(尹有一) · 지황(池黃) · 최인길(崔仁吉) 등을 처형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제4권은 1795년과 1796년의 천주교운동 탄압의 경과와 1798년에서 그 이듬해에 이르기까지의 주문모를 추적한 데 따른 호서지방 천주교 교인들에 대한 박해상을 수록하였다. 제5권은 신유박해의 전말과 체포된 교인들의 판결문을 요약해서 기재하였다.
제6권은 신유박해를 모면한 교인들이 1806∼1807년 이후 용인 · 청송 등지의 산간벽촌으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제7권은 1833년 중국인 신부 유방제(劉方濟, 본명은 여항덕)의 입국사실과, 1836년과 1837년에 주교 앵베르(Imbert)와 신부 모방(Maubant) · 샤스탕(Chastan)이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활동을 한 사실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1839년의 박해와 정하상(丁夏祥)이 당시의 재상인 이지연(李止淵)에게 보낸 「상재상서(上宰相書)」, 헌종이 반포한 「척사윤음(斥邪綸音)」, 프랑스 선교사들의 처형에 대한 1846년 세실함대(Cecil艦隊)의 출동과 그들의 항의문서까지도 수록하고 있다. 아울러 마지막에는 1844년 청나라의 위원(魏源)이 저술한 『해국도지(海國圖志)』의 일부도 채록되어 있다.
양수본에는 현행본의 1권과 6·7권의 부분이 빠져 있고 2∼5권의 내용 중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양자 모두가 척사론의 입장에서 천주교를 사교로 배척하여 박해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편찬한 것이지만 천주교가 전래한 초기부터 조선사회에 던져 준 충격과 반응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천주교교회사 뿐만 아니라 사상사연구에도 많은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