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평양교구에서 창간하였다. 창간당시의 제호는 『가톨릭 연구 강좌』로,1933년 9월 평양교구에서 실시한 강습회에 참가했던 전교회장들이 강습회를 계속하기 위해 전도협회라는 후원회를 조직하였는데, 강사진들이 이 후원회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매달 20일에 50∼90면의 A5판으로 발간하였다.
신부 홍용호(洪龍浩)를 편집인으로 정하고, 편집 실무는 김구정(金九鼎)이 담당하였다. 1933년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교회내의 정기간행물이 폐간된 상태였기 때문에 편집인 홍용호는 창간사에서 『가톨릭 청년』을 포교전의 돌격대로, 『가톨릭 연구 강좌』를 돌격대의 무기인 창과 칼에 비유하여 『가톨릭 연구 강좌』의 창간을 정당화시켰다.
그 뒤, 1934년 3월평양관후리성당(館後里聖堂) 사제관에 있던 편집실을 서포(西浦)의 교구관리소로 이전하면서 7월호부터 『가톨릭연구』로 개칭, 동시에 후원회는 가톨릭연구사로 발전, 개편되었으며, 이어 8월에는 평양교구 가톨릭연맹중앙부의 기관지가 되었다.
1937년 제호가 다시 『가톨릭조선』으로 바뀌고, 발행소의 명칭도 가톨릭조선사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성서해설·호교·교회사·전례·주일학교교리 등이 주였으나, 차츰 문예란·아동란·독자란 등이 증설되었고, 조선순교기념·대구교구설정 26주년기념·간도선교(間島宣敎) 40주년기념 특집 등의 기획기사를 마련하는 등 편집내용과 체제가 다양해졌다.
1936년 『가톨릭청년』의 폐간 이후 한국천주교에 단 하나 남은 잡지로서, 1938년 12월호를 끝으로 폐간되기까지 민족 항일기에 한국가톨릭의 문화와 학술을 대변하였으며, 오늘날 평양 교구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