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완 ()

천주교
인물
해방 이후 『그리스도를 따라서』, 『공동번역구약성서』 등을 저술한 신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5년
사망 연도
1976년
출생지
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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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해방 이후 『그리스도를 따라서』, 『공동번역구약성서』 등을 저술한 신부.
생애 및 활동사항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용소막)에서 선치태와 정치영의 외아들로 출생. 원주 봉산 공립보통학교, 서울동성상업학교(을조 소신학교), 용산예수성심학교를 거쳐 1942년 2월 14일 사제품을 받고 3월에 유학을 떠났다. 일본 중앙대학전문부 경제학과와 법학과(야간)에서 학업을 마친 후 1945년 5월에 귀국하여 경성천주공교신학교(1947년 성신대학, 1959년 가톨릭대학교로 명칭 변경) 교수로 임명되었다.

자신의 회고에 의하면 일본유학은 그에게 학문적인 성과를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1948년에는 다시 로마에 유학하여 우르바노대학(신학사), 안젤리쿰대학 신학연구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서연구대학원(성서학·고고학)을 수료하였다.

≪구약성서≫의 한국어 번역과 6·25전쟁이 주는 심리적 부담 때문에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1952년에 귀국하여 성신대학 성서학교수로 복직하였다. 1954년 4월부터 1955년 3월까지 횡성 본당과 소양로 본당에서 본당 사목을 하였고, 이후 다시 성신대학으로 복귀하여 죽을 때까지 이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의 업적은 ≪구약성서≫ 번역과 수도원 설립으로 대별된다. 1958년 천주교 최초로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한글로 번역, 간행하였는데, 그 동안 천주교 측이 1910년에 4복음서를, 1941년에 서간편을 겨우 번역해 놓은 실정을 감안할 때, 교회 측이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 뒤 1968년 신구교 공동번역에 착수하기까지 그는 단독으로 ≪구약≫ 9권을 번역하였다.

한편, 교회일치운동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던 1968년 1월 가톨릭 측과 개신교 측은 공동으로 성서를 번역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때 가톨릭 측의 성서번역전문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개신교 측의 문익환(文益煥) 목사, 박노순과 함께 8년 동안 구약의 공동번역작업에 관여하였다.

또한, 1957년부터 수도회 설립목표를 세우고 유산처분금 및 메추리사육 수익금으로 1958년 경기도 부천에 대지를 구입한 다음, 1960년 3월 3명의 수녀지원자로 성모영보수녀회(Sisters of the Annunciation, 현소재지는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를 설립하였다.

그의 수녀원 설립취지를 살펴보면, 당시 수녀원 지원에 조건이 되었던 학력제한을 철폐하여 배우지 못한 자도 수녀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한 점과, 노동에 근거한 철저한 자립과 봉사에 대한 강조가 특징으로 나타난다.

젖소사육·집오리사육·양계·농업 등으로 수녀원은 자립하였다. 그 뒤에 지역봉사와 양로원·나환자촌·농민회관 등 특수노동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한 설립취지가 철저히 실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사회사업과 지역교육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1976년 7월 11일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그리스도를 따라서≫(1977)·≪공동번역구약성서≫(1977)가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간한 구약성서들로 <창세기>(1958)·<출애급기·레위기>(1959)·<민수기·신명기>(1959)·<여호수아·판관기·룻기>(1959)·<예레미아예언서·애가·바룩예언서>(1963) 등이 있다.

참고문헌

『오늘의 수도자들』(한국남녀수도자 장상연합회 양성위원회, 분도출판사, 1987)
『말씀으로 산 사제-선종완신부 유고집-』(성모영보수녀회 편, 성바오로출판사, 1984)
「성서국역사논고」(이원순,『민족문화』3,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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