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5년(정조 9) 진사로 있을 때 이승훈(李承薰)을 알게 되어 서학서와 천주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787년 겨울 성균관 근처 마을인 반촌(伴村)의 김석태(金石太) 집에서 이승훈 · 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천주교리를 강습하던 중 동료인 이기경(李基慶)에게 발각되었다.
이기경이 눈물을 흘리며 사학(邪學) 서적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자 강이원은 그 자리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서학서의 이름과 배운 절차를 말하였다. 홍낙안(洪樂安)이 그 내용을 듣고 이기경과 의논하여 상소를 올리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정미반회사건(丁未伴會事件)이다.
관계된 이들이 모두 양반이라 처벌은 면했으나 그 뒤 천주교 탄압이 심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1788년 8월에 서울 및 전국 팔도에 천주교서적을 모두 소각시키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