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련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개항기 의주교회 창설에 공헌한 개신교인.
이칭
  • 문암(文庵)
  • 영수(永受)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의주교회 창설
  • 사망 연도1899년(고종 3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33년(순조 33)
  • 출생지평안북도 의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석만 (서울대학교, 종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개항기 의주교회 창설에 공헌한 개신교인.

내용

자는 영수(永受), 호는 문암(文庵). 평안북도 의주 출생.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신자 중의 한 사람인 백홍준(白鴻俊)과는 사돈 간이다. 1876년 만주의 우장(牛莊)에서 목사 매킨타이어(McIntyre, J.)에게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백홍준이 1883년 권서인(勸書人) 겸 전도인 으로 의주에 귀환하였을 때 그에게 감화되어 개신교의 신자가 되었다.

그는 1873년 진사시에 합격한 양반으로서 전도 사업에 열중하여 많은 신도를 얻었다. 의주에 100여인의 세례지원자가 있음을 알고 신혼여행 명목으로 1889년 봄에 의주에 들른 언더우드(Underwood, H. G, 元杜尤)가 압록강 위에 배를 띄우고, 33인에게 세례를 베푼 이른바 ‘한국의 요단강 세례’에서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고, 의주교회 창설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아들 관근(灌根)과 함께 의주를 중심으로 용천·삭주 등의 평안북도일대를 순회 전도하는 동시에 교육 사업에도 힘을 쏟아 양전백(梁甸伯)·김진근(金振瑾)·한석진(韓錫晉) 등을 배출함으로써 초기 개신교회의 개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가문은 6대에 걸쳐 개신교 신앙의 맥을 이어가 후손 중에서 17인의 장로교 목사가 배출되었다.

참고문헌

  • - 『한국기독교사연구(韓國基督敎史硏究)』(김양선, 기독교문사, 1971)

  • - 『한석진목사(韓錫晉牧師)와 그 시대(時代)』(채필근 편, 대한기독교서회, 1971)

  • - 『조선예수장로회사기(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 상』(차재명 편, 새문안교회,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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