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후 ()

목차
천주교
인물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38년(영조 14)
사망 연도
1814년(순조 14)
본관
김해(金海)
출생지
미상
관련 사건
신해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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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내용

세례명 비오. 본관은 김해(金海). 신부 김대건(金大建)의 증조부이다. 충청남도 면천 솔뫼(지금의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서 면천군수로 재직 중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에게 감화를 받고 50세 때 입교하였다.

그 뒤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다가,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시련을 받기 시작하여 4∼5차례 붙잡혀 전주·홍주·공주 등의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신앙을 지켰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시 체포되어 모진 형벌을 받고 배교를 약속하고 유배되었다.

1805년 귀양에서 돌아온 뒤 배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잡혀 해미감옥에 압송되었는데, 이때도 끝내 배교하지 않아 10년이 넘도록 옥중생활을 하였다. 옥중에서도 굳은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주위의 존경을 받다가 1814년 옥사하였는데, 순교자의 옥중생활 중 제일 긴 기간 동안 갇혀 있었다.

1816년에는 셋째 아들 한현(漢鉉 혹은 宗漢)이, 1839년에는 둘째 아들 택현의 아들 제준(濟俊)이, 1846년에는 제준의 아들 대건이 순교함으로써 32년 동안 4대에 걸쳐 순교자가 나왔다.

참고문헌

『한국천주교회사』중(Dallet, C., 안응렬·최석우 역주, 분도출판사, 1980)
『성웅 김대건전』(김구정, 경향잡지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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