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명 비오. 본관은 김해(金海). 신부 김대건(金大建)의 증조부이다. 충청남도 면천 솔뫼(지금의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서 면천군수로 재직 중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에게 감화를 받고 50세 때 입교하였다.
그 뒤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다가,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시련을 받기 시작하여 4∼5차례 붙잡혀 전주·홍주·공주 등의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신앙을 지켰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시 체포되어 모진 형벌을 받고 배교를 약속하고 유배되었다.
1805년 귀양에서 돌아온 뒤 배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잡혀 해미감옥에 압송되었는데, 이때도 끝내 배교하지 않아 10년이 넘도록 옥중생활을 하였다. 옥중에서도 굳은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주위의 존경을 받다가 1814년 옥사하였는데, 순교자의 옥중생활 중 제일 긴 기간 동안 갇혀 있었다.
1816년에는 셋째 아들 한현(漢鉉 혹은 宗漢)이, 1839년에는 둘째 아들 택현의 아들 제준(濟俊)이, 1846년에는 제준의 아들 대건이 순교함으로써 32년 동안 4대에 걸쳐 순교자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