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4월 1일 대구교구 청년연합회인 남방천주교청년회가 기관지로 발행한 『천주교회보(天主敎會報)』가 전신이다. 창간 당시의 발행인은 신부 베르모렐(Vermorel, J., 張若瑟)이었다. 『천주교회보』에 대한 호응이 높아지자 1931년 7월, 대구교구장 주교 드망쥬(Demange, F., 安世華)는 정식으로 대구교구(경상도·전라도·제주도 지역의 관할교구)의 기관지로 인정하는 공문을 발표하고 천주교회보사를 설립, 신부 페셀(Peschel, 白鶴老)을 사장에 임명하였다.
당시 발행부수는 2천 부 정도였고, 만주와 하와이까지 보급되었다. 그러나 1933년 3월에 개최된 전국 5교구 주교회의에서 『경향잡지』와 『가톨릭청년』만을 5교구에서 인정하는 정기간행물로 결정함에 따라 자진 폐간하였다.
광복 후 대구교구 가톨릭청년연합회는『천주교회보』의 복간을 결정, 1949년 4월 1일에 제74호를 간행하였다. 1953년 3월 7일자 제122호부터는 『가톨릭신보』로 개칭되었고, 1954년 1월 15일자 제137호부터 『가톨릭시보』로 바뀌면서 교구 당국에서 가톨릭시보사로 신문에 관한 사항이 모두 이관되었다.
1960년 1월 3일자 제210호부터는 격 주간에서 주간으로 증간되었고, 1961년 11월에는 대구『매일신보』 사옥으로 이전하여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80년 4월 6일 창간 53주년을 기하여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체재는 국한문 혼용으로 창간 당시 B5배판 4면이었으나 1928년에는 B4판으로, 그리고 1959년에는 다시 배대판으로 확장되었다. 또 창간 당시에는 매달 1일 발행의 월간지였으나 격주간지, 주간지가 되었다.
초교구적 신문인 『가톨릭신문』은 몇몇 평신도들에 의하여 창간된 이래 90여 년 동안 꾸준하게 발행되었다. 1949년 4월 복간 이후에는 6·25전쟁의 전란 중에도 4개월의 휴간 이외에 계속 간행되어 왔다. 한국의 가톨릭 교회 활동을 연구함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