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마르다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병인박해와 관련된 천주교인.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병인박해
  • 사망 연도1868년(고종 5)
  • 성별여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석만 (서울대학교, 종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병인박해와 관련된 천주교인.

내용

일찍이 과부가 되어 방물장수로 생계를 꾸려가던 중 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閔氏)에 의하여 고종의 유모가 되었다.

고종이 즉위한 뒤 민부대부인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여 1864년(고종 1) 주교 베르뇌(Berneux)에게 고백성사를 받았다. 1865년(고종 2) 러시아함대의 남하로 조정에서 프랑스세력을 끌어들여 견제하려 하자 이를 눈치 챈 부대부인의 심부름으로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와 남종삼(南鍾三, 요한)에게 상황을 전해주었다.

이로 인하여 대원군과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질 듯 보였고, 신자들은 천주교신봉의 자유를 곧 얻게 될 듯 기뻐하였으나, 러시아세력의 후퇴로 대원군의 방아책(防俄策)도 바뀌게 되었다.

한편, 1865년 12월 북경(北京)으로 간 조선사절단으로부터 영불연합군의 중국침략과 중국에서의 서양선교사들에 대한 살해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에서는 대원군의 선교사들과의 교섭을 공공연하게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원군이 굴복하여 천주교 박해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병인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난이 일어나자 강원도 홍천으로 피신하였으나 곧 수양아들 이성칠과 함께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뒤 1868년 2월 참수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천주교회사』(샤를르 달레 저, 안응렬·최석우역, 분도출판사, 1980)

  • - 『조선기독교급외교사(朝鮮基督敎及外交史)』(이능화, 조선기독교창문사, 192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