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지의금부사, 경기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대사헌으로 진하사은사(進賀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참의·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7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정철(鄭澈)의 아들 종명(宗溟)을 안성군수로 삼은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 그러나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병조참판에 복직되었다.
곧 이조참판에 올라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한성부우윤을 거쳐 1611년(광해군 3) 대사헌·지의금부사를 지냈으며, 1612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듬해 서인으로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김제남(金悌男)의 역모에 관련하였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죄가 없어 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일찍이 임진왜란 때 군량을 관장하여 보급에 힘썼으며, 소를 올려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 등을 논책하였다.
글씨를 잘 썼으며, 작품으로는 「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가 있다. 청주 수락서원(壽樂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敏)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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