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덕보(德甫), 호는 반학(伴鶴).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송호지(宋好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구(宋枸)이고, 아버지는 장령 송승희(宋承禧)이며, 어머니는 황린(黃璘)의 딸이다.
1595년(선조 2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었다. 1597년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예조좌랑을 역임하고, 이듬해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차례로 거친 뒤, 홍문관수찬이 되어 지제교(知製敎)·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을 겸하였다.
1599년 부응교(副應敎)를 거쳐 사간이 되었는데, 이 때 홍여순(洪汝諄)의 대사헌 임명을 둘러싸고 당략에 빠져 이를 반대하는 소북파(小北派) 남이공(南以恭)·김신국(金藎國) 등의 관직을 삭탈하고 귀양보낼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마침내 두 사람을 파직시켰다.
1607년 광주목사(廣州牧使)로 나갔다가 1611년(광해군 3) 다시 세자시강원필선이 되고, 이듬해 해주목사가 되었다. 1614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고, 1616년에는 형조참판이 된 뒤 이어서 병조참판·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