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물들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81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구례손씨 묘의 복식 유물 15점이다. 중치막[中赤莫] 1점과 장옷[長衣] 1점, 저고리[赤古里] 3점, 바지[袴] 2점(밑막힌 바지 1점, 밑트인 바지 1점), 그리고 족두리(足頭里) 3점과 감투[甘吐, 小帽子] 1점이 있고 그 외 이불과 편의(片衣) 옷감 등이 있다.
1979년 3월 이장 당시 미라로 발굴된 구례손씨는 변유인(卞惟寅: 1566∼1641)의 소실(小室)이다. 구례손씨의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故) 김동욱(金東旭) 교수는 남편 변유인과의 연령차를 가정하여 1626년 정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출토된 유물의 형태적 특징도 17세기 초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출토된 중치막의 형태나 목판깃 저고리와 목판당코깃 저고리의 공존 등이 연대판정의 주요 단서가 된다.
중치막은 지정 당시 ‘누비창의’로 명명되었던 유물이었는데 재조사를 통하여 ‘명주솜누비중치막’으로 수정되었다. 중치막은 소매가 넓으며 옆이 트인 남자 편복포(便服袍)인데, 17세기 전기에는 양 옆선에 삼각무가 달려서 밑단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명주 겉감에 거친 무명 안감을 댄 솜누비 옷인데 누비 간격은 3㎝이다. 뒷길이는 133㎝이고 화장은 114㎝, 뒷품은 50㎝이며 10㎝ 너비의 칼깃에 8㎝ 너비의 동정이 달렸다. 고대는 16㎝이며 겉깃 길이는 52㎝이다. 겉깃에 달린 동정의 길이는 32㎝로 깃 끝에서 20㎝ 위에 달렸다. 소매는 수구 쪽으로 약간 넓어진 형태로 진동 29㎝, 소매통 37㎝, 수구 22㎝이다. 겨드랑이에는 작은 사각접음 무가 달려 있다. 옆트임은 75㎝인데 트임 안쪽에는 겉감으로 5㎝ 너비의 안단을 대었다. 겉섶의 선단 안쪽에도 5㎝ 너비의 겉감을 댄 것이 특징이다. 고름은 너비 3㎝에 길이가 58㎝로 가늘고 길다.
장옷은 1점 출토되었다. 지정 당시 ‘겹유직령포’로 명명되었던 유물인데 소색의 거친 무명의 안감을 넣은 아청색 ‘무명 솜장옷’으로 판정되었다. 뒷길이나 품 등의 치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였으나 재보수작업으로 원형이 복원되었다. 길이 125㎝, 화장 89㎝, 품56㎝이다. 좌우 들여 달린 10㎝ 너비의 목판깃에 6㎝ 너비의 동정이 달려 있고 안섶과 겉섶 모두 두 조각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장옷의 형태이다. 겨드랑이 무는 1변 4㎝이며 소매 끝에는 넓은 소색의 끝동이 달려 있다.
저고리는 4점이 출토되었으나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3점이다. ①‘명주 솜저고리’는 지정 당시 ‘남명주저고리’로 명명된 저고리로, 아청색 명주 겉감에 솜을 둔 목판깃의 ‘명주 솜저고리’이다. 길이는 61㎝이고 화장이 84㎝, 품이 53㎝인데, 2004년 재보수하여 수정된 치수이다. 너비 10㎝인 목판깃은 겉섶 쪽에는 내어달렸고 안섶 쪽에는 들여 달렸다. 고대는 20㎝이고 겉깃 길이는 42㎝이며 겉깃 끝에서 22㎝ 올라온 지점에 너비 6㎝의 흰 동정이 달려 있다. 소매는 진동 26㎝, 수구가 26㎝인 통소매로 끝에는 넓은 소색의 끝동이 달려 있다. 겨드랑이 아래에는 ‘ㄱ자형 무’가 달려 있으며 안팎으로 같은 크기의 고름(2×40㎝)이 달려 있는데 저고리 겉감과는 다른 색상의 명주를 사용하였다. ②‘명주 솜회장저고리’는 겉깃 끝이 약간 곡선으로 잘린 목판당코깃 여자 저고리이다. 겉감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며 깃과 겨드랑이 아래의 ‘ㄱ자형 무’에 자색의 회장(回裝)을 둘렀다. 그리고 옷감 폭을 반으로 가른 듯, 좁은 폭의 옷감을 이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고리 길이는 48㎝로 짧으며 화장은 77㎝, 품은 48㎝이다. 안깃과 겉깃 모두 섶에 걸쳐 달린 형이다. 깃너비는 10㎝이고 겉깃 길이는 42㎝, 고대는 20㎝이다. 동정 너비는 5㎝인데 겉깃 끝에서 20㎝ 올라와 달렸다. 1.5㎝ 너비의 고름은 밑동만 남아 있다. 세 번째 ③‘명주 솜저고리’는 ‘적삼’으로 지정되었던 유물인데 목판당코깃이 달린 여자용 ‘명주솜저고리’로 겨드랑이에 무가 없다. 뒷길이는 54㎝이고 화장은 80㎝이며 품은 52㎝이다. 소매 끝으로 가면서 약간 좁아지는 형으로 수구는 20㎝이다. 겉깃은 11㎝ 너비의 목판당코깃이며 안깃은 안섶에 반 정도 들여 달린 목판깃이다.
바지는 2점인데 어깨끈이 특징이다. 1점은 밑이 막힌 것이고 다른 1점은 밑이 트인 것으로 2점 모두 여자바지로 추정된다. 무명 홑바지는 ‘소색면단속곳’으로 명명되었던 밑막힌 바지이다. 밑아래는 37㎝이고 밑위는 46㎝인데 밑변이 16㎝인 작은 삼각형무가 달려 있다. 그리고 어깨끈(5×27㎝)이 달려 있다. 바지 길이는 80㎝이고 허리말기의 둘레는 86㎝, 너비는 12㎝이며 너비 3㎝의 끈이 달렸던 흔적이 있다. 허리의 주름은 앞뒤 중심 쪽을 향하였는데 주름 간격은 4㎝이다. 명주 솜바지는 ‘겹솜바지’로 명명되었던 것으로, 밑이 트인 개당고형 여자바지이다. 길이는 90㎝이고 허리통은 80㎝, 밑위는 56㎝, 밑아래는 38㎝이다. 바지부리는 36㎝이며 양쪽가랑이에는 넓고 긴 사다리꼴 무가 달려 있다. 허리말기는 너비가 14㎝, 둘레가 80㎝이며 끈은 너비 2㎝에 길이 67㎝인데 옆트임은 수평형이다. 허리말기에는 트임이 없는 쪽으로 약간 들여 달린 어깨끈(7×26㎝)이 달렸다.
치마[赤亇]는 ‘무명솜치마’이다. 길이는 86㎝이고 치마폭은 362㎝이며 주름 너비는 2∼3㎝이다. 허리 말기의 너비는 4㎝이고 길이는 83㎝이며 좌우에 달린 끈은 너비가 4㎝, 길이가 44㎝이다.
족두리는 지정 당시 ‘감투’ 4점으로 보고되었는데 그 중 3점은 여자의 예관(禮冠)으로 쓰였던 아청색 모단(冒緞) ‘족두리’이다. 구례손씨 묘의 족두리는 정수리에 직경 10㎝ 내외의 둥근 조각이 있고 그 주위에 7개의 사다리꼴 조각이 둘려져서 모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앞이 낮고 뒤가 높은 형태이며 안감 없이 솜이 가득 들어 있다. 3점 족두리의 직경은 21∼30㎝이다. 그 외에 끈이 달린 소모자[甘吐] 1점과 ‘명목(暝目)’으로 지정되었던 편의(片衣)와 직사각형의 옷감(146×38㎝) 1점이 있다.
구례손씨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임진왜란 후인 17세기 전기의 복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17세기 전기 여성 저고리에서 목판깃에서 목판당코깃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처음 확인시켜주었던 자료이며 출토된 족두리 유물 중 최초로 발굴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