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은 1941년 경기도 시흥시 염불암 옆에 있던 이형의 부인 동래 정씨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6점의 복식유물이다. 동래정씨는 전주이씨 고림군의 손자인 증 좌찬성 이형의 부인이다. 1583년 사망한 동래 정씨의 묘에서 명주솜누비장옷 1점, 명주솜누비치마 2점, 무명솜누비치마 1점, 바지 1점이 출토되었다. 하나의 바지가 둘로 나뉜 것이 후에 확인되어 실제로는 5점의 유물이다. 묘주의 몰년이 확실하므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980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전주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1941년 경기도 시흥시 염불암 옆에 있던 이형(李泂)의 부인 동래정씨(?∼1583)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16세기의 복식유물 6점.
개설
출토된 복식유물은 6점(실제 5점)인데 명주솜누비장옷 1점, 명주솜누비치마 2점, 무명솜누비치마 1점, 바지 1점이다. 바지는 본래 2점으로 지정되었으나 하나의 바지가 둘로 나뉜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실제로는 5점의 유물이다.
내용
동래정씨 묘에서는 1점의 장옷이 출토되었다. 솜을 두어 2㎝ 간격으로 누빈 넉넉한 크기의 ‘명주솜누비장옷’이다. 지정 당시 ‘명주납의직령포’로 명명되었었는데 현재의 명칭으로 수정되었다. 유물의 길이는 120㎝, 화장은 103㎝, 품은 70㎝이다. 깃은 좌우 섶 안쪽으로 들여 달린 목판깃이다. 깃 너비는 13㎝이고 4㎝ 너비의 동정이 달려있다. 겉섶과 안섶 모두 두 조각으로 구성된 이중섶이며 겨드랑이 아래로 작은 사각접음 무와 커다란 사다리꼴 무가 달려있는 전형적인 장옷 구조를 보이고 있다. 고름은 너비 2cm, 길이 25㎝이다.
치마[赤亇]는 3점이 출토되었다. ‘무명솜누비치마’가 1점 있는데, 1㎝ 간격으로 곱게 누빈 12폭 치마이다. 허리는 유실되었으며 치마 선단에 1㎝ 너비의 별포(別布)로 선 장식을 둘렀다. 다른 두 점은 ‘명주솜누비치마’이다. 솜을 두텁게 둔 10폭 치마인데 1점은 5.5㎝ 간격으로 누볐으며 다른 1점은 2.5㎝ 간격으로 누볐다. 역시 허리말기가 훼손되어 치마폭만 남아 있다.
바지[袴]는 2.5㎝ 간격으로 누빈 밑트인 ‘명주솜누비바지’이다. 지정 당시 ‘내친상(內襯裳)’ 2점으로 지정되었던 유물이다. 보고서에는 ‘속치마의 일종으로 앞은 통으로 되고 뒤의 엉덩이선 이하가 터져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당시에는 트임이 있는 치마 2점으로 이해하였으며 1986년에 간행된 『문화재대관』에도 ‘내친상’으로 설명하면서 거꾸로 된 유물 사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유물은 그간 출토된 다른 묘의 유사한 유물을 통하여 볼 때 가랑이가 분리된 밑트인 바지이다. 조선 전기에는 남녀 모두 이러한 앞뒤로 밑트임이 있는 바지를 밑이 막힌 바지 위에 입었다. 유물의 크기로 보아 여자 바지로 추정된다. 바지 길이는 87㎝이고 허리말기 너비는 8.5㎝이다. 바지 부리는 55㎝, 앞뒤 중심의 트임 길이는 54㎝, 트임 부분에 달린 삼각무의 1변 크기는 10.5㎝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2 복식자수편』(문화재청,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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