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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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
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
의생활
유물
문화재
1941년 경기도 시흥시 염불암 옆에 있던 이형(李泂)의 부인 동래정씨(?∼1583)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16세기의 복식유물 6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李泂 夫人 東萊鄭氏 衣服)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재(1980년 12월 05일 지정)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59 (효자동2가, 전주역사박물관)
정의
1941년 경기도 시흥시 염불암 옆에 있던 이형(李泂)의 부인 동래정씨(?∼1583)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16세기의 복식유물 6점.
개설

조선 전기 1583년(선조 16)에 사망한 동래정씨(東萊鄭氏: ?∼1583) 묘에서 출토된 복식유물이다. 1980년 12월 5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전주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래정씨는 전주이씨(全州李氏) 고림군(高林君)의 손자인 증(贈) 좌찬성(左贊成) 이형(李泂)의 부인이다. 이 유물들은 1941년경기도 시흥시염불암(念佛庵) 옆에 있던 동래정씨 묘를 임실군 둔남면 대정리 종산으로 옮길 때 관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출토된 복식유물은 6점(실제 5점)인데 명주솜누비장옷 1점, 명주솜누비치마 2점, 무명솜누비치마 1점, 바지 1점이다. 바지는 본래 2점으로 지정되었으나 하나의 바지가 둘로 나뉜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실제로는 5점의 유물이다.

내용

장옷[長衣]은 조선시대 여자의 대표적인 포(袍)로서, 여아로부터 성인 여성들까지 널리 착용한 의례복인 동시에 외출복이다. 사계절 착용하였으므로 모시 홑장옷에서부터 솜누비장옷, 솜장옷에 이르기까지 구성법도 다양하다. 신윤복(申潤福: 1758∼?)의 풍속화에서 여성들이 외출할 때 머리 위에 장옷을 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화기 사진에서도 장옷을 입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장옷은 본래 입는 옷이었다.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여성들의 얼굴 가리개였던 너울[汝火]이 사라지면서 장옷이 너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동래정씨 묘에서는 1점의 장옷이 출토되었다. 솜을 두어 2㎝ 간격으로 누빈 넉넉한 크기의 ‘명주솜누비장옷’이다. 지정 당시 ‘명주납의직령포’로 명명되었었는데 현재의 명칭으로 수정되었다. 유물의 길이는 120㎝, 화장은 103㎝, 품은 70㎝이다. 깃은 좌우 섶 안쪽으로 들여 달린 목판깃이다. 깃 너비는 13㎝이고 4㎝ 너비의 동정이 달려있다. 겉섶과 안섶 모두 두 조각으로 구성된 이중섶이며 겨드랑이 아래로 작은 사각접음 무와 커다란 사다리꼴 무가 달려있는 전형적인 장옷 구조를 보이고 있다. 고름은 너비 2cm, 길이 25㎝이다.

치마[赤亇]는 3점이 출토되었다. ‘무명솜누비치마’가 1점 있는데, 1㎝ 간격으로 곱게 누빈 12폭 치마이다. 허리는 유실되었으며 치마 선단에 1㎝ 너비의 별포(別布)로 선 장식을 둘렀다. 다른 두 점은 ‘명주솜누비치마’이다. 솜을 두텁게 둔 10폭 치마인데 1점은 5.5㎝ 간격으로 누볐으며 다른 1점은 2.5㎝ 간격으로 누볐다. 역시 허리말기가 훼손되어 치마폭만 남아 있다.

바지[袴]는 2.5㎝ 간격으로 누빈 밑트인 ‘명주솜누비바지’이다. 지정 당시 ‘내친상(內襯裳)’ 2점으로 지정되었던 유물이다. 보고서에는 ‘속치마의 일종으로 앞은 통으로 되고 뒤의 엉덩이선 이하가 터져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당시에는 트임이 있는 치마 2점으로 이해하였으며 1986년에 간행된 『문화재대관』에도 ‘내친상’으로 설명하면서 거꾸로 된 유물 사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유물은 그간 출토된 다른 묘의 유사한 유물을 통하여 볼 때 가랑이가 분리된 밑트인 바지이다. 조선 전기에는 남녀 모두 이러한 앞뒤로 밑트임이 있는 바지를 밑이 막힌 바지 위에 입었다. 유물의 크기로 보아 여자 바지로 추정된다. 바지 길이는 87㎝이고 허리말기 너비는 8.5㎝이다. 바지 부리는 55㎝, 앞뒤 중심의 트임 길이는 54㎝, 트임 부분에 달린 삼각무의 1변 크기는 10.5㎝이다.

의의와 평가

동래정씨 묘에서 발굴된 6점(5점)의 복식 유물들은 묘주의 몰년이 확실하므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좌우 분리된 밑트인 바지의 두 가랑이를 별개의 유물로 지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던 경우인 만큼, 연구자들이 신중하게 유물을 파악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2 복식자수편』(문화재청,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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