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1444년(세종 26)세종이 초정약수에 행차하였을 때 향교에 서책(書冊)을 하사한 일이 있었다 한다.
1683년(숙종 9)에 현령(縣令) 이언기(李彦紀)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6·25동란 때 서무(西廡)가 소실되었고, 1970년과 1971년에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7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기타 부속건물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4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7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은 판본 8종 47책이 있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