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충동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일제강점기에 청주시 대성동 당산공원의 일본인 신사 터에 옮겨졌다가 해방 이후 구 청화사(淸華寺)로 이전 봉안하였다고 전해지며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보관을 쓰고 지권인의 수인을 한 석조비로자나불상으로 고려시대 불상으로 지정되었지만 근대기의 작품일 가능성도 높다. 2010년 7월 23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청화사는 1940년에 창건된 사찰로서 법당 뒤에 보호각을 지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안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현재는 인근 봉사자들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는 불상이다. 현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노천의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신과 광배, 대좌가 일석(一石)으로 조성되었지만 머리부분은 환조로서 광배와 분리되어 있다. 뒷면은 매우 잘 다듬어져 있다. 머리에는 안에 장식이 있는 삼면보관을 썼으며 얼굴은 긴 편이지만 세부 모습은 마모되어 잘 알 수 없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대의는 통견식으로 입었으며 옷주름은 좌우대칭으로 정리하였다. 수인은 지권인(智拳印)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 있는데 무릎의 일부분은 깨진 상태이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꽃과 화염문이 장식되어 있다. 대좌는 현재 올림연꽃〔앙련(仰蓮)〕이 조각된 상대석만 남아 있다.
보관을 쓰고 지권인을 결한 비로자나불상으로 현재 고려시대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석재라든지, 뒷면 처리, 형식 및 양식적 특징 등에서 볼 때 근대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