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동학사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여래삼불좌상으로 2010년 8월 개금(改金) 불사 과정 중에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복장유물은 조성발원문, 개금중수발원문, 개금불사원문을 비롯해 후령통(喉鈴筒)과 사경(寫經), 각종 경전류와 갓 끈, 거울 등 78건 136점이 발견되었다. 불상조성발원문을 통해 1606년 음력 3월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세불상(三世佛像) 3구와 그 내부에서 나온 복장물로 이루어져 있다. 복장물 가운데 불상조성발원문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충청남도 공주 계룡산의 청림사(靑林寺)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불상으로 밝혀졌다. 불상 제작시기는 1605년 음력 10월 대웅전의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과 극락전 아미타불 등 4구를 조성하기 시작하여 1606년 음력 3월에 완성되었다. 또한 중수개금발원문을 통해서 1883년에는 동학사 대웅전에서 삼세불상의 개금 중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어 1883년 이전에 청림사에서 인근에 위치한 동학사(東鶴寺)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복장유물 중 다른 불상 복장물과 비교되는 것은 일부가 잘려진 남자 갓끈과 작은 손잡이 거울이고, 가장 많은 수량의 경전류는 모두 93권 55책으로 고려 말부터 조선전기에 간행된 불서들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묘법연화경』 권4, ‘대공덕주(大功德主) 효녕대군(孝寧大君)’ 묵서가 적힌 『지장보살본원경』 권하 등이 주목되는 등 그 중요성이 평가되어 불교전적 중 8책은 별도로 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앞으로 숙인 자세에 목과 상체가 긴 비례감, 넓은 무릎이 주는 균형감에서 조화가 돋보이며 위엄 있고 작은 얼굴 표현, 측면에서 느껴지는 마른 체형과 간결한 옷주름 등이 특징인 작품이다. 세 구는 수인과 착의법에서만 조금 차이가 있을 뿐 그 특징이 비슷하며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하고 변형된 편단우견식(偏袒右肩式)의 대의(大衣)를 입었다.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어깨 부위 정도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왼손은 왼쪽 무릎에 거의 닿을 정도로 둔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으며 약사불은 왼손을 든 설법인 자세로 아미타불과 반대의 모습이다. 약사와 아미타불은 편삼(偏杉)을 입고 그 위에 대의를 걸쳤다.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에서 발견된 불상조성발원문에 불상을 만든 사람이 상화원(上畵員) 각민(覺民)이라고 승려 법명이 적혀 있다.
조각승 각민의 작품은 동학사 대웅전 불상,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소장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614년 순천 송광사 대웅전 비로자나불삼존상이 있다. 1614년 순천 송광사 대웅전 비로자나불삼존상은 각민의 주도로 행사(幸思), 청허(淸虛), 보옥(寶玉), 희순(熙淳), 심정(心淨), 응매(應梅)가 참여한 불상으로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한 조각승 각민에 의해 제작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으로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에 조성된 불상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기에 제작된 불상 사례가 많지 않은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각민이 수화승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현존 작품으로 균형있는 안정감, 위엄있는 얼굴 표현 등 우수한 조형성을 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불상조성발원문과 개금중수기는 불상의 조성과 이안 그리고 중수 개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며, 많은 수량의 복장전적(腹藏典籍)은 조선전기 인쇄사와 서지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