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면

  • 종교·철학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유재집』을 저술한 유학자.
이칭
  • 군장(君章)
  • 유재(裕齋)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여산(礪山)
  • 사망 연도195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2년(고종 19)
  • 출생지전라북도 김제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동술 (국민대학교, 한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3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유재집』을 저술한 유학자.

개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裕齋). 전라북도 김제 출신. 아버지는 송응섭(宋應燮)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최세영(崔世榮)의 딸이다.

초년에는 이정직(李定稷)의 문하에서 문장 · 서화 · 역산(曆算) 등을 두루 배웠고, 만년에는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성리와 의리에 관한 학풍을 받아들여 학문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송기면은 심성설(心性說)에서 전우의 기본명제인 ‘성존심비(性尊心卑)’ · ‘성사심제(性師心弟)’의 설을 추종하여 계승, 전개시켰다.

송기면은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유교의 생활규범을 철저하게 지켜가며 전통 유학사상의 토대 위에 근대 유학자로서의 새로운 삶의 좌표를 설정하고, 고향의 요교정사(蓼橋精舍)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면서 “선비는 도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신하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친다.”고 강조하였다.

항일정신이 투철하여 삭발은 물론 창씨개명을 거부하다가 일본경찰에게 갖은 협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송기면은 특히 서예에 뛰어나 왕희지(王羲之) · 미불(米芾) · 동기창(董其昌)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을 정도였으며, 전우의 부탁으로 임헌회(任憲晦)의 신도비명을 비롯하여 많은 비문을 썼다. 김제 병암사(屛巖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유재집(裕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유재집(裕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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