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裕齋). 전라북도 김제 출신. 아버지는 송응섭(宋應燮)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최세영(崔世榮)의 딸이다.
초년에는 이정직(李定稷)의 문하에서 문장 · 서화 · 역산(曆算) 등을 두루 배웠고, 만년에는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성리와 의리에 관한 학풍을 받아들여 학문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송기면은 심성설(心性說)에서 전우의 기본명제인 ‘성존심비(性尊心卑)’ · ‘성사심제(性師心弟)’의 설을 추종하여 계승, 전개시켰다.
송기면은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유교의 생활규범을 철저하게 지켜가며 전통 유학사상의 토대 위에 근대 유학자로서의 새로운 삶의 좌표를 설정하고, 고향의 요교정사(蓼橋精舍)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면서 “선비는 도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신하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친다.”고 강조하였다.
항일정신이 투철하여 삭발은 물론 창씨개명을 거부하다가 일본경찰에게 갖은 협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송기면은 특히 서예에 뛰어나 왕희지(王羲之) · 미불(米芾) · 동기창(董其昌)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을 정도였으며, 전우의 부탁으로 임헌회(任憲晦)의 신도비명을 비롯하여 많은 비문을 썼다. 김제 병암사(屛巖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유재집(裕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