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문백(文伯). 송간(宋侃)의 현손이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였고, 1583년(선조 16) 아산진(阿山鎭)을 지킬 때 여진인이 쳐들어오자 이를 격퇴하여 동방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렸다.
이 해 니탕개(尼湯介)의 침입을 물리쳐 그 공으로 선조로부터 악비(岳飛: 중국 남송의 충신)의 『정충록(精忠錄)』을 하사받고 이산군수가 되었다. 1588년 탐오하다 하여 군수직에서 파직되었으나, 그 뒤 다시 제주목사·전라도방어사 등을 지냈다.
흥양(興陽: 지금의 高興)의 세충사(世忠祠)에 제향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양(忠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