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사복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8년(고종 25)에는 가평의 조종암(朝宗巖)을 내왕하면서 당시에 이름난 최익현(崔益鉉)·유중교(柳重敎) 등 여러 홍유(鴻儒)들과 교유하여 더욱 학문을 익혔다. 1895년에 을미사변이 일어나 안팎으로 일인의 세력이 발호하자,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능주향교(綾州鄕校)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향리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 무렵 근기(近畿) 일원에서 이단을 배척하고 정학(正學)을 지키려는 위정척사학파의 일원으로 태서(泰西)의 학을 극력 배척하였고, 또 일본 등 열강의 외세에 대항하여 이를 물리쳐서 국기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다.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는 주리(主理)·주기(主氣) 어느 일방에 치우침을 경계하고, 이와 기는 하나로 합해진 일물(一物)로 해석하였다. 저서로는 『사복재집(思復齋集)』 6권이 있다.
참고문헌
- 『사복재집(思復齋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