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 이전의 경전 가운데 ≪서경≫에서 말한 정덕(正德)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은 수기치인의 구조를 보여 주는 하나의 원형이다.
그러나 이 수기치인의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은 ≪논어≫ 헌문(憲問)편에 보이는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과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이다.
그 뒤 맹자(孟子)의 성기(成己)와 성물(成物), ≪대학≫의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 장자(莊子)의 내성외왕(內聖外王)은 모두 이와 같은 수기치인의 내용과 구조를 보여 준다.
자로(子路)가 군자(君子)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가 ‘수기이안인’과 ‘수기이안백성’으로 대답한 바와 같이, 이 수기치인은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인격 완성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요청 받는 바람직한 인간으로서의 군자의 길이며, 책임 있는 성인(成人)이 실천해야 할 내용인 것이다. 이처럼 수기치인은 자기 현실과 사회 현실을 책임지는 성숙한 인간의 길이기 때문에 이이(李珥)는 “성현의 학문은 수기치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것이다.
유학의 이와 같은 수기치인의 구조를 가장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대학≫의 팔조목(八條目)이다.
명명덕(明明德), 즉 수기와 신민, 즉 치인의 내용과 과정을 세분화한 팔조목 가운데, 격물치지(格物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은 내적인 인격 완성의 내용과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는 치인의 과정과 내용을 보여준다.
‘나를 닦음’이라는 수기(修己)의 개념은 수양을 통한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중요한 내용으로 한다. 유학은 세계 완성, 즉 이상적인 사회 건설의 가능성을 이상적 인간의 완성에서 찾기 때문에, 항상 수기를 중시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인간 완성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개념으로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의 모든 개개의 ‘나’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의 주체적인 자기 완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수기는 모든 개인이 인간다움을 그 본질로서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근거로, 그가 스스로의 주체적인 노력을 통해 인간 완성을 성취할 수 있고 성취해야 한다는 당위적 요청을 담고 있다.
완성태가 아니라 과정 속에 있는 인간이 그의 현존을, 그 현존의 갈등적 상황을 극복해 가는 것이 바로 수기의 과정이며, 인간 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유학에서 이런 수기의 과정은 두 가지 형태로 이해된다. 첫 번째는 수기의 과정을 ‘성취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회복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공자가 인간 성장의 단계로 보여준 지학(志學)·입(立)·불혹(不惑)·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가 바로 성취의 과정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공자가 안자(顔子)에게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나 맹자의 반지(反之)나 성리학의 복기초(復其初)는 ‘회복의 과정’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이러한 수기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힘은 주위의 세계에 대한 감화력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치인(治人)이라 한다. 주희는 이 인(人)을 ‘나’라는 주체와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천하와 국가가 모두 인이라 하였다. 이 때 인의 개념은 인간 사회 전체를 가리킨 것이다.
한편, ‘다스린다’고 해석되는 치(治)는 단순히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바른 모습을 갖도록 만드는 모든 형태의 행위와 영향을 통괄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고 바로잡아 주는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어디에서 그러한 권리가 부여되는가 하는 문제다. 또한 정치와 교육, 나아가 형정(刑政)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사회적 행위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남이 동일한 인간 본질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선각(先覺)과 선지(先知)가 후각(後覺)과 후지(後知)를 각성시키는 형태로만 정당성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치인이 가능한 유학적 이론 근거다. 이와 같은 수기와 치인의 개념 위에서 유학은 이 양자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를 중시한다.
≪대학≫ 이래 전통적 유학의 입장은 수기와 치인을 본말론적(本末論的)인 관점에서 이해한다. 자기 완성을 뿌리로 하여 사회의 완성이 가능하다는 이 수기치인의 본말론적 이해는, 인간 행위의 사회적 결과를 중시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의 도덕성과 절제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는 자기 완성이 성취된 뒤에만 사회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완성의 정도만큼 사회 완성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수기치인의 본말론적 이해는 사회적 행위 이전의 자기 도덕성을 강조한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우리 나라 유학은 초기에는 정치적 이념을 중심으로 수용되었고, 따라서 이 수기치인의 내용도 주로 정치 이념의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에 이미 “이 때문에 제왕(帝王)은 연호(年號)를 세워 수기로써 백성을 편안히 하지 않음이 없다(是以帝王建號 莫不修己以安百姓)”는 표현이 나오며, 이와 같은 경향은 고려시대에도 계속되었다.
또한 최승로(崔承老)는 그의 <시무이십팔조 時務二十八條>에서 불교의 기능을 수신(修身), 유교의 기능을 이국(理國)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유학을 현실 정치 이념으로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리학이 들어온 이후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확립한 조선조에 이르러 유학은 독존적 위치를 확보하게 되고, 인간의 자기 완성으로부터 사회의 완성까지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진리의 학문(道學)’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따라 그 핵심적 내용을 이루는 수기치인도 전체적으로 이해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이이의 ≪성학집요 聖學輯要≫다. 그는 ≪성학집요≫ 전체를 수기치인의 구조로 편성하고, 그 세목과 과정을 단계적으로 서술하여, 후에 유학의 규범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