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의하면 경문왕 때 그는 동료 화랑인 요원랑(邀元郎)·예흔랑(譽釁郎)·계원(桂元) 등과 함께 금강산 방면 금란(金蘭 : 지금의 강원도 통천)을 유람할 때 화랑 출신의 국왕을 위하여 치국(治國)의 뜻에서 노래 세 수(首)를 짓고, 다시 사지(舍知) 벼슬에 있던 심필(心弼)을 시켜서 이를 향가(鄕歌) 작가로 이름난 대구화상(大矩和尙)에게 보내어 「현금포곡(玄琴抱曲)」·「대도곡(大道曲)」·「문군곡(問群曲)」등 노래 세 수를 짓게 하였다.
대구화상이 이 사실을 국왕께 아뢰자 왕은 크게 기뼈하여 그들을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