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국대장공주는 원나라 진왕(晉王) 감마랄(甘麻剌)의 딸로서 1296년(충렬왕 22) 충선왕이 세자로서 원나라에 있을 때 세자빈이 되었고 충렬왕 24년에 고려에 왔을 때 충선왕이 선위(禪位)하여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이 때 숭경부를 설치하고 관속을 두었다. 명덕태후는 남양사람으로서 부원군(府院君) 홍규(洪奎)의 딸이다. 충숙왕때 덕비(德妃)로 책봉되었으며, 충혜왕·공민왕의 어머니이다. 일찍이 부(府)를 세워 덕경(德慶)이라 하였는데 공민왕이 즉위한 후에 문예(文睿)로 바꾸고 대비(大妃)로 삼았다.
그러다가 1372년(공민왕 21)에 문예를 숭경으로 고치고, 후비에게 주던 일반적인 관속(官屬)보다 높은 관원을 두도록 하여 더욱 우대하였다.
이 같은 숭경부의 우대는 다른 부로 하여금 숭경부의 예를 따라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제도에 배치된다고 하는 헌부(憲府)의 탄핵을 받아 공양왕 2년에 다시 환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