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룡성(御龍省)에 소속되어 왕실의 경적도서(經籍圖書)를 장악함과 아울러 동궁(東宮)에 대한 교수를 담당하였다. 설치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경덕왕 때 상문사(詳文司)가 한림대(翰林臺)로 개칭될 때, 당나라의 숭문관(崇文館)을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말기에는 숭문관으로 개칭되었다. 소속 관원으로는 장관직인 낭(郎) 2인을 비롯하여 사(史) 4인, 종사지(從舍知) 2인을 두었다. 신라 말기에는 낭을 학사(學士)·직학사(直學士)로 고친 듯하다. 현재 남아 있는 금석문 자료에 의하면 경문왕 때의 명필인 요극일(姚克一)이 숭문대랑(崇文臺郎)을 역임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