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비부

  • 역사
  • 지명
  • 삼국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 행정조직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기동
  • 최종수정 2024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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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 행정조직체.

내용

경주 육부(六部) 중의 하나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32년(유리이사금 9)에 종래의 육촌(六村) 중 하나이던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을 개명하여 습비부라 하고 이 부에 설씨성(薛氏姓)을 배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후대에 아마도 469년(자비마립간 12)에 서울의 방리(坊里) 명칭을 제정하였을 때 종래의 족제적인 사회조직을 행정조직으로 개편함으로써 나타난 것인 듯하다.

명활산 서남쪽, 현재의 보문리(普門里)일대와 낭산(狼山) 부근을 포함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가 망한 뒤 고려는 940년(태조 23)에 이를 임천부(臨川部)로 고쳤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신라의 기원문제」(이병도, 『진단학보』 8, 1937 ;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 - 「사로육촌과 경주고분」(김원룡, 『역사학보』 70, 1976)

  • - 「신라 상고시대의 육촌(六村)과 육부(六部)」(이종욱, 『진단학보』 49, 1980)

  • - 「新羅六部考」(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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