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승회균(承晦均). 호는 춘악(春岳).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10년 남만주 환인현(桓仁縣)으로 이주하여, 1913년 김진호(金鎭浩)·이시열(李時說)·곽봉조(郭鳳祚) 등과 함께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조직, 활동하였다.
1917년 통화현(通化縣)에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하여 청소년교육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20년 편강렬(片康烈)을 중심으로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여 길림(吉林)·장춘(長春) 등지를 근거지로 만주와 국내에서 적의 기관파괴와 친일파 숙청에 활약하였다.
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혁명자대표자대회에 재만독립군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2년 단장 편강렬이 일본경찰에 잡히자 단장으로 활약하였다.
1924년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을 목적으로 대한통의부·군정서·광정단·독립단 등 10개 단체대표 중 의성단의 대표로 참석하여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고 재정분과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31년 길림성 교외에서 친일전향주구배인 권수정(權守貞, 일명 李鍾榮)파에게 피살당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이,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