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홍문관부제학, 호조참판,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17년에 홍문관부제학·호조참판·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는데, 특히 이조판서로 있을 때는 과거시(科擧試)의 전형을 맡아 사사로움이 조금도 없는 공정한 관리를 하였으며, 1522년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 좌참찬(左參贊), 이해 겨울에 호조판서 겸 세자좌부빈객(戶曹判書兼世子左副賓客)을 거쳐, 1536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신공제는 순창의 수석을 사랑하여 한 정자를 짓고 스스로 이계주인(伊溪主人)이라 하였는데, 호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고 촉체(蜀體)를 잘 썼다. 또한, 『해동명적(海東名蹟)』이라는 동국명인의 필적을 간행하였다. 글씨는 광주안참판침묘비(廣州安參判琛墓碑)와 남원윤판서효손묘비(南原尹判書孝孫墓碑)가 남아 있다. 청백리에 피선되었으며,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재집(企齋集)』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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