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0년대에 설립되었던 신파 극단.
개설
연원 및 변천
특히 1919년에 우리나라 영화의 효시가 된 연쇄극「의리적 구투(義理的仇鬪)」를 비롯해서「형사고심(刑事苦心」, 1920년「의적(義賊)」 등을 공연했으나,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1920년 2월에는 구력망년흥행(舊曆忘年興行)으로 취성좌(聚星座)와 합동공연을 가졌으나, 단장 김도산이 사망하자 해산되었다. 이 극단은 임성구(林聖九)의 혁신단, 이기세(李基世)의 문예단(文藝團), 김소랑(金小浪)의 취성좌 등과 함께 1910년대 신파극을 대표하던 초창기 신파극단이며, 아직 토착화되지 않은, 왜색이 짙은 신파극을 공연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한국 근·현대 연극100년사 편찬위원회, 집문당, 2009)
- 『한국연극반세기』(강계식, 현대교육출판부, 1986)
- 『한국신극사연구』(이두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 「1910년대 연극사 연구」(한갑수,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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