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를 졸업하였으며, 조선어강습원에서 김두봉(金斗奉)·이규영(李奎榮)·최현배(崔鉉培)·이병기(李秉岐) 등과 함께 주시경(周時經)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동덕여학교(同德女學校)에서 오랫동안 교원으로 있었으며, 1921년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의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동인지 『한글』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서 권덕규(權悳奎)·이병기·최현배·정열모(鄭烈模) 등과 함께 『한글』(1927.2.∼1928.12.)을 펴내어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진력하였다.
1931년부터 조선어연구회를 모체로 하여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가 발족되자 그 기간회원으로서 활약하였으며, 기관지인 『한글』(1932년 재창간) 등을 통하여 「한글마춤법통일안」 제정사업에 앞장을 섰다.
국어연구 및 맞춤법통일안 제정사업과 관련된 일부 업적은 「한자음 문제에 대하여」(『한글』1권 2호, 1927.3.) 및 「한자음에 대하여」(『한글』 1권 3∼5호, 1927.4. 7호, 1927.7.~11.), 「조선글 마침법(철자법)」(『한글』 2권 1호, 1928.1.) 및 「조선글 마침법」(『한글』 2권 2호, 1928.10.), 「맞춤법의 합리화」(『한글』 1권 3호, 1932.7.) 등이며, 또한 「박승빈 씨의 소위 경음이란 역사상, 성음상 아무 근거가 없다」(『한글』 8호, 1933.5.)에서는 된소리는 각자병서(各自並書) ㄲ, ㄸ, ㅃ 등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을 학구적으로 논술하고 있다. 이는 맞춤법통일안의 된소리 표기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기도 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어문법(朝鮮語文法)』이라는 문법서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청년상식보급회’가 계획한 청년상식총서 가운데 들어 있는데 그의 저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보면, 주시경·김두봉으로 이어진 문법체계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곧 품사분류 등에서 조사나 어미를 품사로 인정하는 문법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문법에서는 품사명을 한자어로 적고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한편, 출판사 중앙인서관(中央印書館)을 경영하면서 소년지 『신소년(新少年)』과 조선문학전집으로서 『시조전집(時調全集)』, 『주시경집(周時經集)』, 『가사집(歌詞集)』, 『소설집(小說集)』, 『백옥루』 등을 펴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간행한 이 자료집은 당시로서는 가장 집대성된 고전문학자료로 평가된다.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