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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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명의 전달과 전알(傳謁) 등을 맡은 액정국(掖庭局)의 별칭.
이칭
  • 이칭내알사(內謁司), 액정국(掖庭局), 항정국(巷庭局)
제도/관청
  • 설치 시기995년(성종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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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왕명의 전달과 전알(傳謁) 등을 맡은 액정국(掖庭局)의 별칭.

내용

995년(성종 14)에 설치된 액정국은 개국 초부터 있어온 액정원(掖庭院)의 후신으로, 왕명의 전달과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궁궐문의 열쇠 · 자물쇠의 관수(管守) 및 궁궐내 뜰의 설비 등에 관한 제반잡무를 총괄한 대표적인 잡직관서이다.

그 직제는 문종 때 정해졌으나, 이후 여러 차례 명칭 및 직제의 변동이 있었다. 더구나 100년간에 걸친 무신정권과 곧 이은 원나라와의 강화로 고려의 전통적인 관제가 문란해짐에 따라 궁궐내 내료(內寮 : 궁중에서 잡무를 맡은 벼슬아치의 총칭)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많은 폐단을 야기시켰다.

따라서 1278년(충렬왕 4)김주정(金周鼎)의 건의로 특별히 왕명전달과 계사(啓事)를 맡는 내료를 골라 신문색으로 하였는데, 이 때 액정국이라 하지 않은 것은 당시 몽고식 표현이 혼용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뒤 1308년 내알사(內謁司)라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액정국으로 고치고, 1310년에는 항정국(巷庭局)으로 하였다가 고려 말에 다시 액정국으로 환원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 때 체제를 기반으로 액정서(掖庭署)가 세워져 직제가 보다 세분되어 궁궐 내 제반잡무를 책임지었다. 더구나 직책은 낮아도 국왕의 측근에서 왕을 보필하였던 자리였으므로, 그들의 실권은 대단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액정국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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