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원(景源), 산목(山木)
  • 시호문간(文簡)
  • 태초(太初)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821년(순조 2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판서|경기도관찰사
  • 출생 연도1757년(영조 3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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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태초(太初), 호는 산목(山木)·경원(景源). 김시발(金時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교행(金敎行)이고, 아버지는 군수 김이인(金履仁)이다. 어머니는 참봉 이극현(李克顯)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3년(정조 7)에 생원이 되고, 1789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 사직서직장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초계문신(抄啓文臣: 37세 이하에서 우수한 자를 뽑아 규장각에 소속시키고 공부하게 한 문신)에 발탁되고, 사서를 강론하였다.

1791년 부수찬·삼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사간으로서 이가환(李家煥)의 부당함을 상소하다 삭직당했으나, 곧 포천에 암행어사로 나가 민폐를 살폈다. 1793년 상소한 일이 말썽이 되어 파직되었다.

1796년 괴산군수와 서산군수를 지낸 뒤, 1799년 응교·부응교·세자보도 등의 임무 수행 중 영남 지방에 기근이 들어 암행어사로 다녀왔다. 그 뒤 전라도관찰사·승지를 거쳐, 1800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순조가 즉위하자 실록당상(實錄堂上)에 제수되었다.

시강원보덕·이조참판을 거쳐 1803년 영남안찰사, 1806년 호조·예조·병조·공조의 참판과 한성부서윤·이조참판·한성부판윤·대사헌 겸 홍문관제학·비변사유사당상 등을 두루 지냈다. 1809년 병조판서·이조판서, 이듬해에 호남관찰사, 1812년 광주유수·이조판서 겸 세자빈객으로 인재 등용을 고르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평소에 사감을 가졌던 전 참의 한시유(韓始裕)의 무고로 사직당하였다. 뒤에 정헌으로 승계한 뒤 종부시제조·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1819년 경기도관찰사로 재임 중 어머니의 3년 상을 치른 뒤 죽었다. 어릴 때부터 문사에 능했으며 경술(經術)에 조예가 깊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천집(淵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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