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영남면 영통사터에 있는 고려전기에 건립된 승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의 탑비.
내용
비신 앞면 상단에는 ‘贈諡大覺國師碑銘(증시대각국사비명)’이라는 제액이 4행 행2자씩 전서로 음각되어 있고, 그 좌우에 봉황과 보상화문을 양각하였으며 비면의 가장자리에도 보상화문대를 양각하였다. 옥개석의 처마에는 네모진 서까래를 모각하였다.
의천은 고려 문종의 아들로 11세에 경덕왕사(景德王師)난원(爛圓)을 따라 영통사에 머무르면서 화엄의 교관(敎官)을 배웠다. 비문에는 어린 시절부터 불가에 들어간 뒤 송나라에서 천태 · 화엄 양종의 깊은 뜻을 배우고 귀국하여 해동의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 그의 일대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1101년(숙종 6) 10월 국사에 책봉되고 같은 달 5일 입적하여 대각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비는 그가 입적한 뒤 1125년(인종 3)에 세워졌다.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김부식(金富軾)이 지었으며, 글씨는 오언후(吳彦侯)가 썼다. 고려 전기에 유행하던 구양순풍의 해서로서 대표적인 명품이다.
한편, 비의 뒷면 음기(陰記)에는 앞쪽에 대각국사의 묘실과 비명을 안립한 사적기를 쓰고, 이어서 문도들의 이름 · 직명 등을 새겼다. 전자는 문하승 영근(英僅)이, 후자는 문하승 혜소(慧素)가 모두 해서로 썼는데, 특히 혜소의 글씨는 절정기에 이른 명품이다.
탄연(坦然) · 혜관(慧觀) 등과 함께 당시 고려 중기의 서풍혁신에 큰 역할을 한 서가라 하겠다. 이밖에도 대각국사의 사적을 살필 수 있는 석문(石文)으로 「흥왕사대각화상묘지(興王寺大覺和尙墓誌)」 · 「선봉사대각국사비(僊鳳寺大覺國師碑)」가 있다.
참고문헌
-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 『朝鮮金石攷』(葛城末治, 東京 國書刊行會,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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